삼성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향후 3년간 총 240조원의 대규모 투자와 약 4만명의 고용 창출 행보에 나선 것은 재계 1위 기업에 거는 역할론에 화답한 결과다.
지난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두고 사회 곳곳에서는 그의 출소 전부터 지금까지 찬반양론이 분분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가적 경제 위기 상황'과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가석방 명분을 제시하면서 힘을 실어주자, 삼성은 이 부회장의 출소 11일 만에 속전속결로 과감한 투자·고용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이다.
특히 이번 투자·고용 계획은 국내 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신규 투자 240조원 가운데 75%에 해당하는 180조원을 국내에 투입할 계획이다. 또한 공채 제도를 유지하며 향후 3년간 4만명을 신규로 직접 고용하겠다는 계획도 청년 실업을 우려해온 미래 세대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5G·6G)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4대 전략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이후 미래 산업과 국제 질서, 사회구조 대변혁에 대비할 계획이다.
우선 반도체의 경우, 이미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공고히 하고 시스템 반도체는 투자 확대로 세계 1위 도약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메모리는 단기 시장 변화보다는 중장기 수요 대응에 초점을 두고 투자를 지속하고 시스템 반도체는 기존 투자 계획을 적극적으로 조기에 집행할 계획이다.
메모리 기술은 물론 원가 경쟁력 격차를 다시 확대하고 14나노 이하 D램과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혁신 차세대 제품 솔루션 개발에 투자한다. 시스템 반도체는 선단 공정을 적기에 개발하고 혁신 제품 경쟁력을 확보, 글로벌 1위로 도약할 계획이다. 또한 기존 모바일 중심에서 AI, 데이터센터 등 신규 응용처로 사업을 확대하고, 관련 생태계 조성을 지원할 예정이다.
삼성 측은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반도체 업계 매출 1위이나,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반도체 공급망 재편 등 급변하는 국내외 '비상 상황'을 고려해 반도체에 대한 공격적 투자는 삼성에게 사실상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K-반도체 벨트 전략 보고대회'에서 향후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71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시설투자를 가속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을 비롯해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만 향후 3년간 최소 50조원 이상이 투입될 전망이다.
이번 투자 계획에는 대규모 인수합병(M&A)도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는 앞서 향후 3년간 유의미한 M&A를 진행할 계획임을 공개하고 AI, 5G, 전장 부문에서 인수 대상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로 미국 등 투자결정과 M&A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대비해 사실상 '국가 안보산업'이 된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바이오 사업 시작 9년 만에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을 3개 완공한 상태다. 현재 건설 중인 4공장이 완공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 능력은 62만 리터로 세계 1위로 올라선다.
바이오시밀러를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 10번째 제품이 임상에 돌입했고, 이미 5개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 출시돼 경쟁력을 키워오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앞으로 공격 투자 기조를 지속해 CDMO 분야에서 5·6공장을 건설,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생산 허브로서의 절대 우위를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외에 백신 및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치료제 CDMO에도 신규 진출할 예정이다. 바이오시밀러도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고도화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 측은 "전문 인력 양성, 원부자재 국산화, 중소 바이오텍 기술 지원 등 바이오 산업 강화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창출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삼성은 차세대 통신 분야의 경우,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를 달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집중 투자하고 신사업 영역·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에 주력할 계획이다.
AI 분야에서는 전세계 거점 지역에 포진한 '글로벌 AI센터'를 통해 선행기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고성능 AI 알고리즘을 적용한 지능형 기기를 확대하는 등 연구와 일선 사업에서 모두 절대우위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로봇 분야에서는 핵심 기술 확보와 폼팩터 다양화를 통해 '로봇의 일상화'를 추진하고, 첨단산업 분야의 설계와 개발을 위한 슈퍼컴퓨터 활용도 확대할 계획이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분야에서도 차세대 OLED·QD(퀀텀닷) 디스플레이 사업화, 고에너지 밀도 배터리 및 전고체 전지 등 차세대 기술 리더십을 강화할 계획이다.
◆청년 중심으로 4만명 고용…대·중소기업 간 상생 박차
삼성은 앞으로 3년간 4만명을 직접 채용할 계획이다. 통상적인 채용 계획을 따르면 3년간 고용 규모가 약 3만명이나, 앞서 내세운 첨단 전략산업 위주로 1만명가량의 고용을 확대한다. 또한 3년간 예고한 국내 대규모 투자로 56만명의 고용·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삼성은 기대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관계사들은 국내 채용 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삼성이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시작한 신입사원 공채 제도도 유지하기로 했다. 사회공헌·교육 사업도 강화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청년 소프트웨어(SW) 아카데미, 스타트업 지원 'C랩' 사업을 확대해 청년 취업난 해소와 첨단 신성장 산업 육성에 기여할 방침이다.
삼성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해 기초과학·원천 기술 연구개발(R&D) 지원 확대와 스마트공장 전환 지원, 우수협력사에 대한 안전·생산성 격려금 확대 등 상생안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