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전세계인의 축제라 하는 올림픽이 지난 23일 도쿄에서 개막됐다. 그런데 코로나19 펜데믹 와중에 천신만고 끝에 이번 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에 격려를 보내지 못할지언정 우리 특유의 반일감정이 작동되고 있어 왠지 석연치 않다. 지난 8일 도쿄는 네 번째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이에 도쿄 시민들은 올림픽 개최 반대 운동을 개진했다. 그럼에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개최를 밀어붙였다. 결국 북한을 제외한 세계 206개국이 참여함으로써 예정대로 23일에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의 성화가 점화되었다.
우리나라 대표선수들 또한 올림픽 개최 소식에 안도하고 고무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비인기 종목의 아마추어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세계 최고 무대에서 그동안 닦은 기량과 실력을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이번 올림픽이 5년 만에 개최되면서 이들은 1년을 더한 고생과 역경을 기쁘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선수들의 이런 마음과 정서에 역행하는 정치적인 행각을 벌이면서 나라의 국격과 체면을 너무나도 구겨버렸다.
문 대통령의 집권 지난 4년 동안 드러난 그의 일본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어떠했나. 그는 유독 일본에 대해 저돌적이었다. 지난 정부가 일본과 합의한 것을 모두 일방적으로 폐기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반일 정서와 감정을 선동했다. 그의 측근들은 ‘죽창가’를 부르짖었고 일본제품의 불매운동을 주도했다. 한·일관계가 과도하게 악화되자 이를 우려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는 여론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갑자기 올림픽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마저 조건부였다. 개막식 참석을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양국관계 정상화를 외교 이벤트로 이용하려는 언론 플레이를 전개했다. 겉보기에는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외교문제에서 역지사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편협한 자세와 사고를 생각하면 그의 개막식 참석과 한·일정상회담이 무산된 탓을 일본에게 전가하기 좋은 술책이었다.
외교는, 특히 정상회담은 이런 식의 일방적인 요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삼척동자도 잘 안다. 사전교감이 있어야 한다. 즉, 평소에 문제의식을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제된다. 이런 것 없이 정상회담의 의제 조율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일본과 소통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위안부, 역사 문제 등을 올림픽 정상회담을 통해 한 번에 해소하려는 꿈을 꾼 것이다. 그러나 상기한 바와 같이 올림픽 개최와 관련해 일본 내의 문제만으로도 골머리를 앓는 스가 총리에게 이런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할 여유가 없다.
우리의 국격과 체면은 또다시 우리 정부 기관인 대한체육회에 의해 구겨졌다. 우선 이들은 5년 만에 올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단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29개 종목에 참가하는 우리 232명의 대표선수들은 이날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고생을 참고 견뎌내왔다. 이들의 노고에 국민들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그런데 19일에 이들이 올핌픽 선수촌에 입소하자마자 대한체육회가 거행(?)한 처사가 정치적이었기에 이를 두고 잘했다는 국민의 호응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국민의 올림픽에 대한 자세와 정신의 성숙도를 대한체육회가 따라가지 못한 방증이다.
우리 선수들 거주동의 테라스에 태극기와 “Team Korea” 현수막을 내건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상기한 바와 같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일본과 도쿄 시민을 정치적으로 자극하는 처사를 납득하는 이는 드물다. 테라스에는 “신에게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입소 첫날부터 걸렸다. 임진왜란 이순신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반일감정과 정서로 희화한 데 대해서 말이다. 이후 일본과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를 불온한 전시(戰時) 메시지라면서 반발했다. IOC 관계자는 우리 측에 이의 즉각 철거를 요청했고 올림픽 헌장 50조를 근거로 제시했다. 게다가 자극을 받은 일본 극우단체의 항의와 욱일기를 내거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이를 사흘 만에 “범 내려온다”로 교체했다.
올림픽은 한·일전이 아니다. 올림픽은 그야말로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한 장이다. 그런데 대한체육회가 이를 한·일간 감정싸움으로 몰고간 데는 우리 정부 내의 대일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올림픽을 정상회담의 외교이벤트로 삼으려 했고 여의치 않자 이의 책임을 일본에게 전가하는 정부의 처사와 일맥상통한다. 일본의 올림픽 관련 자료에서 독도 표기가 문제되자 이의 시정을 우리 측은 요구하면서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했다. 이런 식의 정치적 행각을 벌이면서 결국 우리는 세계적 스포츠 문화 이벤트를 한·일전으로 격하하는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독도 표기 문제다. 일본의 독도 표기 문제는 잘못된 것이다. 이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그러나 형평성의 문제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문제에만 강경하게 항의한다. 일본의 역사왜곡만 만천하에 알리려고 한다. 정작 중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한다.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문제로 고구려를 포함한 우리의 고대사가 왜곡되었지만 말이다. 이후 어떠했는가. 2007년 중국 장춘 동계올림픽에서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피켓을 들며 태극낭자들이 시상대에서 이른바 ‘백두산 세리머니’를 했다. 중국 측은 우리의 주중대사를 초치했고 대한체육회장의 출국길에 중국 측은 고성으로 이에 강력히 항의했다.
내년 2월이면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다. 이의 개최도 불분명하다. 펜데믹의 이유 뿐 아니라 홍콩, 티벳과 신장 위구르족의 인권문제 때문이다. 이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으면서 이들의 지탄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6일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를 이유로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보이콧을 언급하는 해프닝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중국의 지도를 보면 우리의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는 ‘일본해’ 표기법을 두고 지난 수십년 동안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런데 중국의 표기법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중이다.
중국은 두 가지 이유로 ‘일본해’의 ‘동해’ 표기법을 거절할 것이다. 하나는 ‘동중국해’라는 표기법이 이미 존재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중국해’는 일본과 조어도(釣魚島, 센카쿠열도, 댜오위다오)를 두고 영토분쟁이 일어나는 해역이다. 중국은 ‘동중국해’를 줄여서 자신의 ‘동해’로 이미 사용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즉, 고대 때부터 ‘동해’로 표기되어왔다고 주장할 것이 자명하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을 우리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도 수긍하는 모습을 지금까지 보여온 것이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이에 대한 항의가 딱 한 번 있었다. 그것도 우리의 시민단체(반크, VANK)에 의해 2000년대 초에 제기된 것이다. 한·중·일 사이에서 균형과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만이 우리의 ‘반도(半島)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