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시진핑 늑대전사 상대할 외교 맷집 있나

2021-07-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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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지난주에 있었던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은 경사로운 축제보다는 섬뜩한 도발에 가까웠다. 베이징 천안문 광장 연단에 올라선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계속 중국에 도전하면 “14억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쌓은 강철 장성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전 세계에 대한 선전 포고로 들릴 수도 있는 호전적인 연설이었다. 물론 시 주석의 연설 전체가 서방에 대한 경고로 계속된 것은 아니지만, 서방 세계는 그가 선택한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용어에 주목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격화되는 중국의 소위 늑대 전사 외교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외교는 부드럽고 완곡한 표현을 써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철칙으로 알려져 있다. 설사 뒤로는 전쟁을 준비하더라도 앞에서는 가능하면 선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중국은 최근 이런 원칙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특히 해외에 파견된 중국의 외교관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 과거 파키스탄 주재 중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자오리젠이 대표적이다. 그는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공격하는 미국 등 서방에 대해 직설적으로 공격하며 거칠고 험한 말을 내뱉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를 인정받아서인지 그는 나중에 외교부 대변인으로 발탁되었다. 그를 포함한 전투적 중국 외교관들은 2015년 중국에서 히트한 영화 '전랑'에 나오는 늑대 전사로 묘사된다.

이러한 중국의 도전적인 외교는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된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미·중 간 고위급 회담에서 이는 여실히 드러났다. 3월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이 회담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홍콩이나 대만, 신장 등 중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미국 대표에게 반대로 거센 공격을 하며 일종의 훈계까지 한 바 있다. 인종 갈등 등 내분을 겪고 있는 미국 내의 문제나 잘 해결하라는 요지였다. 결국 이 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양측 간의 설전으로 끝나버렸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 역시 중국 견제를 외교의 큰 목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반발하는 중국의 대외 공세는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전투적인 중국 외교 행태의 배경은 높아진 중국의 위상에 따른 자신감이다. 경제, 군사,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외부에 순종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미국 등 선진 사회가 인종 문제 등 내부 갈등 요소로 갈수록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특히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젊은 외교관들은 자국에 대한 애국심과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지나친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다. 여기에 공격적인 시진핑의 외교 정책이 더해지며 늑대 전사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다.

이는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지도자들이 취해온 신중하고 부드러운 대외 정책과는 큰 차이가 있다. 시진핑 이전 지도자들은 중국의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견제와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화롭고 겸손한 중국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썼다. 특히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문화, 미디어, 원조 등을 매개로 한 공공외교에 큰 역점을 기울였다. 공자학원을 전 세계에 설립해 중국의 문화와 언어를 보급했고 아프리카 등 개발 도상국에 대한 기여를 통해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소위 말하는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통해 과거 식민지배와 노예제도의 원흉인 미국과 유럽과는 다른 온화한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실 그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공격적인 중국의 늑대 외교로 인해 이러한 성과들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다. 미국 퓨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반중 감정은 역대 최고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가장 높아 88%에 달하고 한국도 77%를 기록해 스웨덴, 호주에 이어 4위에 위치한다. 미국은 5위로 76%다. 반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일방적인 외교 정책으로 해외에서 추락하던 미국의 해외 이미지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급속하게 상승하고 있다. 퓨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주요 16개국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트럼프 정권 말기 34%에서 바이든 정권 출범 후 62%로 수직 상승했다. 'Diplomacy is back', 즉 외교가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다자주의를 천명한 것이 큰 이유가 되었다.

해외에서 이렇게 중국의 이미지가 실추하는 데에도 중국 외교관들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이러한 거친 외교 행태가 국내에서는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의 경우에서 보듯이, 해외에서 거친 독설로 서방을 공격한 외교관들은 국내에서 오히려 인정 받아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시진핑의 경우도 10년 임기를 마치는 내년에 재임을 통해 장기 집권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외교가 국가 이익을 위하기보다는 국내 정치용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친 중국 외교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는 한국이다. 이는 과거 사드 미사일 배치 때 중국의 각종 보복을 통해 실감 나게 경험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인 한국의 협력을 구하면 구할수록 이러한 위험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얼마 전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 회담을 전후해서 중국은 이미 한국에 강한 압박을 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소위 ‘전략적 모호성’을 동원해서 조심스럽게 중국의 공격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당장 큰 문제는 터지지 않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미국의 ‘약한 고리’인 한국에 대한 중국의 파상 공격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외교 역량은 부족해 보여 걱정이 앞선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 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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