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스 기랄 연세대 경영대학 부학장은 16일 데일리동방 'KEDF 2021'에 기조 연설에서 "ESG 평가 기관들은 저마다의 기준을 갖고 있어 같은 기업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며 "특히 해외 평가 기관은 한국 기업을 평가할 때 한국 상황에 맞춘 제대로 된 평가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랄 교수는 "기업의 ESG 조치는 핵심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품의 품질. 제품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원들의 만족도를 올리는 경우에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가 기준 제각각...리스크 최소화 염두에 둬야"
기랄 교수에 따르면 많은 기관이 기업의 ESG 환경 평가에 나서고 있지만 평가 지표와 범위는 상이하다. 모건스탠리만 봐도 '트리플C'부터 '트리플A'까지 7단계에 나눠 점수를 주고 있지만, 톰슨 로이터와 모닝스타는 각각 12단계, 5단계로 나눈다. 같은 '5점'을 받아도 기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ESG 경영 평가를 시작한 유럽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국제 평가를 받는 데 상당히 불리하다. 중공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 특성상 환경 오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이다. 환경 관련 어젠다에서 대부분 중국 책임론을 꺼내지만 현실적으로 인구 대비 오염물질 배출량은 한국이 더 많은 상황이다. 그린 에너지 연구·개발(R&D) 투자 비용도 유럽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다.
기부 활동에 집중하는 사회 공헌 방식도 국제사회에서는 약점으로 꼽힌다. 한국 기업은 대부분 기부 활동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해외 평가 기관은 이 부분을 눈여겨 보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환경 부문 가중치가 높아서다. 한국 기업의 작은 스캔들이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하거나 기껏 추진한 ESG 경영 활동이 저평가 받는 이유다.
기랄 교수는 대한항공과 오뚜기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기랄 교수는 "대한항공은 우수한 국제 항공사지만 해외 평가 지표에서는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며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갓뚜기(god+오뚜기)'로 통하는 오뚜기도 제품 가격 동결·정직원 제도 등으로 한국 시장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환경 부문 관련 투자가 적다는 점 때문에 (해외 평가에선) 점수를 깎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들이 '사람'에 맞춰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라고 그는 지적했다. 다만 평가 기준과 지표가 제각각인 만큼 해외 평가 기관의 잣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랄 교수의 제안이다. 해외 평가 기관의 평가 항목을 참고하되 작은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주력 사업에 ESG 경영을 얹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ESG를 단순한 사회 공헌 활동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핵심 사업 부문과 연계하는 게 핵심이다. ESG 정책에 관여하는 경영진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공업 분야라면 대기 오염 배출량을 줄이는 쪽으로 ESG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관련 R&D 비용을 늘려야 기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때 R&D 투자는 비용이 아닌 장기적인 시장가치를 추구하는 장치라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수다.
◆"지속 가능성·경쟁력 확보 등으로 PRI에 대한 인식 바꿔야"
10여 년 전에 일찌감치 ESG 경영의 개념과 토대를 마련했던 유럽에서는 제법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과 가중치가 확고하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매년 주제별 기업의 주주활동을 파악해 책임투자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사회 효율성 등 지배구조 관련 기업 미팅이 1774건으로 환경 주제 미팅(1107건)을 뛰어넘었다.
한국의 국민연금 격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도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할 때 △적절한 경영진 보상 프로그램 △이사회 운영 효율성 △투명한 이사 추천 과정 등을 주요 조건으로 본다. 경영진을 보상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경영 성과가 있었는지 평가하는 게 핵심이다. 환경과 사회 공헌 부문이 다소 상징적 ESG 활동이라고 한다면 사내 인적 재원에 대한 보상은 실질적 ESG로 보는 관점의 연장선이다.
기랄 교수는 "ESG 노력하는 기업이 실질적 ESG조치를 하면 더 큰 시장 성과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를 '재정적인 지속 가능성'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예산 문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리소스가 제한적이기에 상징적 조치 할지, 실질적 조치 할지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랄 교수는 이어 "수익들을 본다면 상징적 조치를 별로 많이 취하지 않고 실질적 조치를 많이 취하는 경우 가장 높은 혜택을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상징적 ESG 조치와 실질적 ESG 조치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 ESG 조치를 취했을 때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