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알고리즘의 新포로' 중국 라이더의 피땀 눈물

2021-05-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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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달 음식배달원 체험한 베이징대 박사생 노동사회학 논문 '화제'

"알고리즘의 완벽한 통제" 라이더는 '목숨'걸고 달릴 수밖에

"저승사자와의 경주···2.5일에 1명씩 교통사고 사상자 발생"

"노동자 착취" 메이퇀에 쏟아지는 비난 세례

"디지털통제 아래 새로운 포로”
“저승사자와의 경주”


‘배달왕국’ 중국의 1000만명에 달하는 음식 배달원, 이른 바 라이더의 노동 현주소다. 중국 음식배달 플랫폼의 정교한 알고리즘에 통제받는 라이더가 직면한 열악한 노동 환경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중국 최대 음식배달 앱 메이퇀(美團)에는 노동자를 착취해 돈을 버는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중국 음식배달원의 고달픈 현실. [사진=웨이보]

 
◆ '알고리즘의 포로' 경험한 베이징대 박사생

중국 베이징대 노동사회학 전공 박사생 천룽(陳龍)이 다섯 달 넘게 음식 배달원 직업을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논문이 최근 중국서 화제가 됐다. 논문은 노동사회학 관점에서 배달 플랫폼 알고리즘의 ‘포로’로 전락한 배달 근로자의 고달픈 현실을 고발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산하 잡지 환구인물(環球人物)은 직접 천룽을 만나 그가 논문을 쓰게 된 배경을 취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의 논문은 '왜 라이더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까지 목숨 걸고 질주하며 배달을 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를 노동사회학 관점에서 분석하기 위해 지난 2018년 3월부터 8월까지 직접 다섯 달 넘게 음식배달원을 체험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23페이지짜리 ‘디지털통제 아래 노동질서-배달 라이더의 노동통제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중국 최대 음식배달 플랫폼 메이퇀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배달원에게 배달 일감을 배분하고, 배송 경로와 시간을 지시하고, 라이더는 이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다.

처음엔 배달에 서툴렀던 천룽도 차츰 숙련되며 하루 30~40건 주문을 받아 배달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배달을 하면 할수록 멈출 수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라이더 일에 '중독'되고 있다고 느꼈다. 이를 “플랫폼의 '디지털 통제(알고리즘)' 아래 새로운 포로가 됐다”고 천룽은 표현했다.

수백만명의 라이더를 통해 수년간 누적한 배달 경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알고리즘은 음식 주문부터 배달까지 전 과정을 수치화 해서 라이더의 모든 행동을 완벽히 예측하고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알고리즘의 완벽한 통제" 라이더는 '목숨'걸고 달릴 수밖에

라이더는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구조다. 그래서 그들은 플랫폼이 정한 배달시간을 맞추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린다. 과속, 신호등 위반,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배달시간을 맞추면 맞출수록 플랫폼은 배달시간을 더 단축하고, 그렇게 되면 라이더는 또 목숨을 걸고 달릴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천룽은 “라이더는 (플랫폼에 의해) 강제적으로 능력의 한계치를 발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메이퇀에 따르면 음식 배달 속도는 매년 빨라지고 있다. 2016년엔 3km 거리의 배달 제한시간은 1시간이었는데, 2017년 45분, 2018년 38분으로 점점 단축됐다. 2019년  주문 1건당 배송시간은 3년 전보다 10분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왕싱 메이퇀 창업주는 2016년 11월 “메이퇀 음식배달은 그 누구보다 빠르다”며 “이는 매우 뛰어난 기술의 구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같은 기술 발전을 실천하기 위해 라이더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자신들의 능력 만으로는 알고리즘이 정해놓은 배달시간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라이더는 “만약 교통법규를 어기지 않고 정상적으로 일하면 하루 배달량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호소했다.

배달앱에서 정한 배달시간을 초과할 경우엔 라이더에게 불이익이 돌아온다. 고객으로부터 '악평'을 받아 벌금을 내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 내내 주문을 받을 수 없거나 오프라인으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심지어 악평을 많이 받으면 해고될 위험도 있다.

플랫폼은 디지털 통제로 라이더를 완벽히 통제해 감시, 감독, 처벌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들의 배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라이더가 더 빨리 배달할수록 더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북돋아 최종적으로 이들을 ‘자발적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 "저승사자와의 경주···2.5일에 1명씩 교통사고 사상자 발생"

냉혹한 디지털 통제가 가져온 결과 중 하나가 교통사고다. 라이더는 이미 중국에서 고위험군 직업 중 하나가 됐다. 한 라이더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음식배달은 저승사자와의 경주이자, 교통경찰과의 대결이자, 빨간 신호등과의 친구를 맺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는 통계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중국 잡지 ‘인물’에서 보도한 ‘알고리즘에 갇힌 라이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보도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상하이에서는 2.5일에 1명씩 라이더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8년 쓰촨성 청두 교통경찰이 7개월간 적발한 라이더 교통법규 위반 사례만 1만건에 육박한다. 이중 교통사고 발생건수만 196건으로, 155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하루에 평균 1명씩 라이더가 교통법규 위반으로 사망 혹은 부상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다수 근로자는 음식 배달 플랫폼에서 '외주'로 고용돼 있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자기 부담으로 하루 3위안(약 500원)짜리 상업용 보험을 들어 목숨을 보장하는 데 그치고 있다. 
◆ 라이더 5명 중 1명꼴 "12시간 일한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중국인들이 음식배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말 메이퇀에 등록된 라이더 950만명에 달했다. 전속 고용(專送)과 프리랜서(眾包) 근로자가 모두 포함된 수치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속 실직하거나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거 라이더 대열에 합류했다. 메이퇀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발 기간 메이퇀 플랫폼에 신규 등록된 라이더 수는 33만6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라이더가 늘어날수록 배달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수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 지난 19일 중국 여러 사회기관과 베이징시가 공동발표한 '라이더의 생존과 발전 수요 보고서'에도 음식배달 근로자의 고달픈 현주소가 잘 드러나있다. 이는 343명 라이더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20%가 하루 평균 근무시간이 12시간이 넘는다고 답했으며, 37.32%는 매달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한다고 응답했다. 

31% 이상의 응답자는 근무할 때 기본적인 존중과 이해를 받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20%는 미래가 막막하다고 했다.

또 27.69% 응답자는 현재 수입으로는 일상생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답했다. 기본적 생활 수요를 충족시키는 수입을 위해선 휴식시간을 쪼개고 건강을 포기해 일해야만 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72.31%에 달했다. 
 
"노동자 착취" 메이퇀에 쏟아지는 비난 세례

메이퇀.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라이더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메이퇀이 노동자를 착취해 돈을 벌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최근 중국 중국 시장감독관리총국, 교통운수부, 공안부 등 8개 정부기관은 합동으로 메이퇀을 비롯해 10곳의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관계자를 소환해 운송데이터 독점, 요금체계 조작과 함께 플랫폼 소속 노동자 이익을 침해했다며 이같은 문제의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메이퇀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외식배달 수요가 늘면서 매출이 20% 증가한 663억 위안(약 11조6100억원), 순익은 갑절이 증가한 28억 위안을 기록했다. 특히 메이퇀 음식배달 플랫폼 주문건수가 101억5000만건에 달하며 총거래액은 전년보다 16.3% 늘어난 4885억 위안에 달했다.

하지만 이중 배달원의 몫은 10% 남짓인 486억9200만 위안에 그쳤다. 전체 배달원 수가 950만명에 달하는 걸 감안하면 1인당 1년간 고작 5100위안 남짓 벌어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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