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상황이 시시각각으로 유출돼 수사관계인에 의해서 수사 결론이 계속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 심리로 7일 열린 재판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직접 한 말이다.
이날 재판은 공판 갱신절차로 진행됐다. 지난 2월 3일 법관 정기 인사로 재판부 구성원이 모두 바뀐 뒤 처음 열리는 재판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재판은 2019년 3월 25일을 시작으로 횟수로는 122차례 진행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우리 피고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예단에 관한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까지 불어왔다"며 "그 광풍이 불어닥칠 때는 이를 수습할 여지나 생각도 없었고 마치고 난 뒤에는 그 잔해만 남은 상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검찰 고위 간부가 모종의 혐의로 수사받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며 '수사상황이 시시각각 유출되고 수사 관계인에 의해 수사 결론이 계속 제시돼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고 짚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언급한 검찰 고위 간부는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연구위원은 사법농단 사태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검사로 이 사건 수사를 맡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늘 이 법정에서 심리하고 있는 이 사건이야말로 어떤 언론이 '수사 과정이 실시간으로 중계방송 되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쉬지 않고 수사 상황이 보도됐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쏟아졌던 언론 보도와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자, 사실상 사법농단 사건을 지휘했던 한 연구위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이런 발언 이후 양 전 대법원장은 "일반 사회에서는 마치 (판사들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범행·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젖어 들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과거에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인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며 "새로운 재판부가 그런 상황을 혜량해 이 사건 본질이 뭔지,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이날 약 1시간에 걸쳐 발표 형식으로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최근 다른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 공모가 인정된 부분과 관련해선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아무리 대법원장이라도 법관의 재판 심리에 개입할 수 없고, 법관은 개입 행위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도 했다.
앞서 같은 법원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일부 혐의에 양 전 대법원장이 공모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