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의 파르헤지아] 4.7 보궐선거 민심과의 가상인터뷰

2021-04-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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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7재보궐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다. 2021.4.3 [연합뉴스]



보궐선거 사전투표일 이틀째인 토요일. 마침 봄비 치고는 사납게 내리는 비로, 투표장 입구부터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들로 붐볐다. 코로나 방역 조치에 따라 줄을 서서 순번에 따라 6명씩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주민증을 내미니 마스크를 내려보라고 했다. 얼굴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젖은 손을 닦고 투표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가 도장을 찍고 나왔다. 여러 가지 심란한 상황에서 겨우 행사한 한 표라고나 할까. 투표장을 나왔을 때 비는 더 거세졌다. 나오면서 생각이 오히려 복잡해졌다. 나 또한 'n분의 1' 민심이 아닌가. 투표장 앞에서 가상으로 만난 '이민심'씨와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투표를 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막다른 선택을 한 서울시장의 후임을 뽑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죽은 시장에 관한 불미(不美)함을 기억하는 일도 그렇지만, 여야가 서로 한 하늘을 이지 못할 원수처럼 헐뜯고 싸우는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의 양상 또한 그렇네요. 물론 선거라는 것이 한순간의 선택으로 당분간의 '정치권력'의 운명을 만들어내는 일인지라, 치열한 건 당연하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답답한 건, 대결을 벌이는 사람들 혹은 그 대결의 양축이 된 세력들의 의식이 동물적인 으르렁거림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물적인 으르렁거림이라고까지 표현한 까닭은?

"이 개운찮은 기분이 투표장에서의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몇년간 이 땅을 몰아쳐온 살벌한 싸움들이 빚어낸 것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싸움들 속에서 정당들은 지향하고 영위해야 할 방향과 목표를 잃어버리고, 당면한 적을 제압하여 싸움의 장(場) 안에서 낮은 수준의 으쓱함을 유지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글로벌 세상 속에서 특유의 뛰어난 면모를 과시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겨레로 손꼽히기도 하는 이 나라가, 왜 눈을 높이지도 못하고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며 오로지 낮은 수준의 키재기에만 골몰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 외국에선 우리를 이상하게 보고 슬그머니 '문제가 있다'는 부전지를 붙이는 견해들도 늘어났지요. 왜 우리는 이런 나라가 되었으며, 이런 정치 속에 살고 있으며, 이런 싸움 속에 휘말리고 있으며, 이런 결말 없는 스토리 속에서 헤매고 있겠습니까."

-우선 여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부터...

"문재인 정부를 창출한 민주당은, 누가 뭐래도 촛불혁명의 적자였습니다. 이전 정부의 무능과 권력의 기형화에 분노한 시민들이 밤마다 피워올린 촛불로 얻어낸 성취를 현정부에게 아낌없이 몰아주었지요. 이 정부는 과거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미션을 자임하고 국가권력을 맡았습니다. 집권 초반에 밀어붙인 호쾌한 적폐청산은 민심을 시원하게 긁어준 민주주의의 승리처럼 여겨졌지요. 그런데 이 정부는 민심이 기대하던 얼굴 이외에 다른 얼굴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얼굴이라고요? 

"예.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촛불에 대해 얘기를 좀 할까 합니다. 우선, 촛불 민심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전정부와 집권당의 몰상식에 대한 반발일 뿐이었죠. 그 두 가지 정서가 겹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민주당이 전정부의 몰상식을 청산하면서 이전 권력과는 다른, 상식의 길을 걸었다면, 촛불 민심의 주류는 스스로의 지지를 철회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또한 촛불의 아낌없는 지지가 이 정부의 모든 얼굴에 대한 조건 없는 지지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취임 초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서, 무혈시민혁명이 이뤄낸 민주주의의 성채는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갔습니다."

-아, 그게 다른 얼굴이란 말씀이군요.

"문 정부의 얼굴에는, 촛불시민들이 염두에 두지 않았던 '종북주의나 종중(從中)척일(斥日)반미(反美) 같은 낯선 근린외교'가 포함되어 있었고, 유명대학+시민단체+민주화운동권(두음자를 따서 '유시민권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이라는 권력필수경력이 숨어있었고,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부동산시장을 걷잡을 수 없이 만들어놓은 무능과 유연성 부족이 들어있었습니다. 거기에, 권력의 아픈 곳을 수사하려는 검찰총장과의 갈등 속에서 드러낸 편협한 '자기보호 본능'과 공격적 진영주의가 자리잡고 있었지요. 이건 촛불이 원하던 그림도 아니었고 촛불이 들여놓은 민주주의도 상식적 합리주의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었던 몇 가지 사안들은, 실권(失權) 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 집권 연장을 구명도생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나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이 그 이전의 많은 집권당에 비해 수월(秀越)한 '내면'을 갖췄다고 믿어온 골수지지자들 또한, 그것을 의심하게 하는 사안이나 면모들이 돌출될 때마다 가만히 그 지지를 철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최근 보이는 지지율 하락의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사진=연합뉴스]



-야당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근혜 정권이 전복되면서 그 잔당(殘黨)의 포말로 남은 무리가 근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탈색과정과 내부혁신을 거쳤다 하더라도 민의가 다가가기에 꺼림칙한 정치집단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촛불을 일으킨 원인제공자들이었고, 한국 현대사의 적폐와 무능과 부패와 부도덕과 비효율을 꾸준히 생산해왔던 사실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쿠데타 권력의 피를 수혈받았으며 민(民)을 착취하는 귀족 당파를 이뤄왔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국정원과 검찰을 끼고 권력의 아성을 쌓았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합리적 사회시스템을 지연시키지 않았습니까. 이들에게 다시 표를 주고 권력의 기회를 주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며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지금보다도 못한 시절로 돌아가잔 말인가. 이런 질문이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던 것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 작년 총선이 치러지기 1년전쯤인 2019년 4월 민주당의 싱크탱크(민주연구원)에서 '대한민국 중심 정당의 혁신적 포용노선'이라는 보고서를 냈던 걸 기억하십니까. 그들이 총선을 위해 분석하고 준비한 자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었지요. <집권 3년차부터는 (정부여당) 지지도가 하락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여당의 오만과 독선이 국정운영으로 나타나고 권력형 스캔들이 터진다면 지지도가 급락할 수 있다. 특히 생활 체감 이슈는 증폭형 이슈다. 스피커의 볼륨 같은 역할이다. 여권에 유리한 이슈의 소리는 작아지고 불리한 이슈의 소리는 더욱 크게 만든다. 민심은 생활체감 이슈가 증폭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중간평가 격인 전국선거를 앞두고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예외 없이 패배와 레임덕이 온다.> 이런 경고가 내부에서 공유되면서 당시 집권당의 긴장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촛불정신에서 이탈하여 '낯선 얼굴'을 거듭 드러내면서 민심이 어느 정도 당황하고 있을 무렵이었죠. 2020년 총선은 중요한 심판의 시간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아마도 이 정부에게 확실한 권력을 주어서 그 소신을 실천하도록 밀어준 것 같습니다. 특히 지지자들이 뭉쳐서 바람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K방역이라는 '위기대처 능력'을 선보이면서 민심을 바꿔놓은 점도 있습니다. 이전의 세월호에서 보여준 소극적이고 무능했던 대처와는 다르게 보였지요. 이 포인트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같은 곤경에 처해있던 세계의 시선들이 일시적으로 한국의 진단키트에 쏠리기도 했습니다. 조국 전법무장관의 자녀 입시부정 스캔들과 부동산 폭등 같은 여권의 악재가 등장했지만, 여당은 대체로 성공적인 정치환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지난 총선 이후 여당은...

"민주당은 오만해졌습니다. 싱크탱크의 경고를 무시하고, 180석이라는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독주를 시작했지요. 책임정치라는 명분으로 상임위원장을 모두 여당으로 뽑고 웬만한 법안들은 거침없이 밀어붙였습니다. 이런 완전한 권력에는 반드시 그 '책임'의 계산서가 따른다는 것을 그들은 잠시 잊었던 것 같습니다. 부동산 정책은 그들의 방심이 빚어낸 가장 끔찍한 결과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규제'로 부동산을 사려는 욕망을 묶는 것이었지요. 규제로 시장을 이기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집값 광풍이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서도 그들은 방법이 잘못됐다는 내부 진단을 하지 못했지요. 독주가 낳은 독선(獨善) 때문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진상이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규제가 제대로 되지 못했고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오분석함으로써, 더 큰 실패를 낳았습니다. 거기에 LH사태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지요. 사실 LH사태가 부동산 실정의 근본 원인이 아니죠. 그런데도 이토록 파장이 커진 까닭은 규제를 몹시 앞장세웠던 정부로서 그 규제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금이 가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보선에서 야당의 활약을 어떻게 보는지.

"국민의힘은, 정부 정책의 거대한 실패를 반사의 탄력으로 삼아 그간 등돌린 민심을 끌어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호는 오직 '정권심판'에 그쳐있을 뿐, 뭘 하겠다는 설득이 없습니다. 야당의 존재감은 오직 여당의 실패에서 생겨날 뿐입니다. 그런 정당에 무엇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권력을 창출할 준비를 여전히 갖추지 못한 무리들이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민심도 정말 난감하겠군요.

"이번 선거는 촛불정권에 대한 민심청구서 예고편이라는 의미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 민심청구는 정권 자체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그것을 다른 권력으로 교체했을 때의 전망에 대한 평가가 모든 표심 속에서 교차되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당도 민심으로부터 적극적인 호평을 받지 않고 있다는 점, 이것이 투표지를 쥔 민심의 비극입니다. 투표는 집단이 발설하는 하나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심은 하나의 발언을 내놓겠지요. 그 발언에서 낙점을 받은 정치세력은 환호를 지르고 그렇지 못한 곳은 실의에 잠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민심의 언어가 뚜렷하게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을 때를 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투표의 경우 단일메시지를 내놓기도 어렵고 상대적인 가치를 매겨서 발언하기도 어렵습니다. 즉 촛불정권의 가치를 손절매하기도 어렵지만 이대로 놔두기도 어렵고, 촛불항의로 이미 파산이 난 정당이 상대의 실수와 실패를 반사적인 탄력으로 삼아 되살아나는 쪽에 선뜻 베팅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민심 딜레마의 본질은, 이 아리송한 '심판의 저울'을 인식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이 땅의 두 정치집단이, 그리고 전체적인 정치판의 양상이, 실용의 가치와 미래비전의 역량으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상대방을 부정하는 증오와 분노, 갈등을 증폭시켜 그 반사적 가치를 스스로의 생명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우세한 것으로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야당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서울의 경우 박영선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55.9%가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여론조사(한국경제 입소스 3월 26일~27일 조사) 결과가 나왔지요. 그런데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28.3%였습니다. 반면에 정부 여당을 심판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48%였습니다. 민심이 야당 지지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여당에 대한 불만이 커졌는데 그것을 표현한 방법이 오직 야당에 표를 주는 것 밖에 없어서 그것을 선택하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선거 결과가 어떻게 민심의 정확한 값을 계산해내겠습니까. 그러니 더욱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번 서울-부산 재보선의 사전투표율은 20.5%였다. 비가 쏟아진 주말이었지만 재보선 사전투표율로는 역대 최고치였다. 많은 유권자들이 사전 투표에 나선 것에 대해 민주당은 위기의식을 느낀 여당의 열성 지지자들이 후보를 지키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것이라고 짚었고, 국민의힘은 정권의 오만 무능과 부동산 정책실패 그리고 보선의 원인인 성비위(性非違) 사건에 대한 심판의 열기라고 해석했다. 뚜껑을 열지 않은 민심에 대해 자의적인 해석으로 본선거를 유리하게 하려는 당의 입장이야 짐작할 수 있지만, 같은 상황을 두고 아전인수 해석을 하는 이 '생각의 구조'가 지금 이 나라를 꾸준히 망치고 있는 불화와 갈등의 일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증오의 정치로 일관해온 이 진영논리의 판을 훌쩍 걷고, 디지털 대전환기와 글로벌 신질서를 선도하는 정치적 총력으로 거듭날 순 없을까. 민심과의 인터뷰는, 코로나 이후 르네상스 주도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정치에 대한 안타까움을 남기며 끝을 맺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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