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규 칼럼] 아! 아큐정전 정신승리에 빠진 한국

2021-03-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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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阿Q를 닮아가는 대한민국

위선·불공정 만연…정신승리법으로 진실 '외면'

[조평규 중국 연달그룹 전 수석부회장. ]

대학시절 읽었던 루쉰(魯迅)의 <아큐정전(阿Q正傳)>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아큐정전은 철학자 최진석 교수(서강대 명예교수)가 주도하는 철학적·과학적·인문학적 연구와 교육 그리고 학술활동을 하는 사회단체 '새말 새 몸짓'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해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아큐정전! 阿Q를 닮아가는 한국

아큐정전은 100여년 전 청말(淸末)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중국 민중의 혁명 허구성을 비판한 루쉰의 중편소설이다. 아큐라는 농촌 날품팔이를 내세워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와중에서, 자존심만 강했던 중국 민족의 약점과 병폐를 고발했다. 민족적 계몽을 촉구하는 주제가 강하게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루쉰이 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큐라는 인물은 성도 이름도 없고, 고향도 어딘지 분명치 않은 떠돌이 날품팔이다.

그는 시골의 동구 밖 사당에서 기거하며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아간다. 천성이 비굴해서 지주나 힘센 동네 건달에게는 꼼짝 못하지만, 힘이 약한 사람이나 여승(女僧)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못난이다.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영웅주의와 패배의식이다.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아첨하는 비굴함을 보여 준다. 다만, 하는 일과는 달리 자존심은 강해서 자기의 신체적인 결점에 굴하지 않고, 노름에서 돈을 잃거나 남에게 얻어 맞아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혁명당이 마을로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나, 아큐는 혁명당이 자기의 편이라고 자위하고 우쭐했으나, 어느 날 도둑의 누명을 쓰고 혁명당에 잡혀 총살형을 당한다.

루쉰은 아큐라는 인물을 통해 5000년 탄탄한 역사와 철학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중국 민족이, 실질적으로는 무기력한 노예 근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기만으로 현실을 호도(糊塗)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무기력한 중국 지식인과 백성들의 노예근성을 고발하고 있다.

'새말 새 몸짓'에서 아큐정전을 이달의 책으로 선정한 것은 아큐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요구로 들린다. 아큐에는 100여년 전 신해혁명 당시 반식민지·반봉건이라는 시대적인 과제를 외면하고, 무기력하며 비겁한 노예근성을 보인 중국 백성들의 모습이 투영됐다. 아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최근 우리 사회는 정치인·관료·지식인·언론들의 온갖 술수와 왜곡을 목격하고도, 자기가 가진 자산이나 직위·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둥 뒤에 숨어 자신을 은신한다.

'새말 새 몸짓'은 아큐정전을 이달의 책으로 선정해 코로나19라는 지구적인 재난, 위선적인 정치와 지식인의 비겁함, 개와 돼지로 전락한 한국인의 무력함을 고발하고, 건너가기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통찰력을 얻기를 주문하는지도 모른다.

◆아큐의 정신승리법

정신승리법은 자기가 처한 위험이나 불안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합리화해 정신적으로 만족을 얻고, 현실은 외면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위선자들에 의한 통치는 시민들에게 정신승리법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내몰고 있다.

아큐정전에서 아큐는 동네 깡패들에게 무참히 몰매를 맞고서도 "아들뻘 되는 녀석들에게 맞았으니, 아들에게 맞은 격이다.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고, 나는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았다"고 자기 합리화한다. 아큐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당할 때마다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고 아픈 기억을 묻어버린다. 

쑨원(孫文)에 의해 청조 타도와 공화제 수립이 추진됐으나 신해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패배의식에 젖은 중국인들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정신적 승리로 생각하는 정신승리법으로 자위했다.

최근 우리사회는 위선과 불공정 그리고 정의가 사라진 지경에 이르렀으나, 정신승리법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권력과 자기 패거리들의 지지를 받는 도둑이 법과 헌법을 유린해도 분노할 줄 모른다. 사익을 위해 정의와 공정을 심각하게 훼손해도 못 본 체한다. 국민들의 이러한 모습에서 '아큐(阿Q)'를 느낀다.

기득권을 확보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자유와 인권 그리고 불공정에 대한 저항 의식은 없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남의 잘못은 비판하는 내로남불이 대표적인 아큐의 모습이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 내면과 사회에 대한 루쉰의 통찰력은 100년이 지난 현대에도 배울 점이 있어 보인다. 루쉰은 "중국인들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개·돼지로 취급하고 있는데도 입 다무는 침묵은 금이 아니다.

권력과 억압적 분위기에 굴종하는 우리는 아큐(阿Q)인가? 아큐의 아류(亞流)인가?

조평규 전 중국연달그룹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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