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는 논어의 첫머리에 호학의 즐거움을 이야기 하고, 15세에 ‘학(學)’에 뜻을 뒀다고 했을 만큼, 호학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과거부터 호학은 자신의 변화와 성장, 인간 완성을 위한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가르쳐왔다.
자기보다 어리거나 낮은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은 공자가 얼마나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잘 나타낸다.
공자는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일지라도 나 정도의 충직하고 믿을만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호학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라고 했다. 공자가 얼마나 겸손하고 호학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현대에 이르러 호학이란 ‘지식을 쌓는 행위를 좋아하다’는 의미로 축소되고 있다. 공부한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오늘날까지 호학이라는 말은 강의나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호학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인격 수양을 제시한다. 우선, 자기를 낮추는 겸양이 선행되지 않는 호학은 제대로 된 배움이라 할 수 없고, 금방 허물어져 버린다. 배우기만 하고 바르게 현실에 실천하지 않는 것도 무용지물이다. 오만과 독선으로 뭉쳐진 사람은 자신의 아집 때문에 배움의 기회가 있어도 배우지 못한다.
◆호학, 제대로 배워야
많이 배운다고 좋은 것이냐? 지금은 지식의 양이 많다고 존경이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한 것을 삶에서 얼마나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많이 배우지 않았더라도, 정직하고 겸손하며 순박하게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했다. 생각없이 많이 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적절히 생각도 해야 하는 균형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은 배운 뒤에야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는 존재다.
◆ 호학의 원천···호기심과 상상력
인터넷과 유튜브의 급속한 보급으로 지식을 학교에서만 배우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학습이 일상화 되고 있다. 이미 일상 속에 깊이 자리잡은 비대면 문화의 영향으로,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이전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기 어렵게 됐다.
호학은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나온다. 호기심과 상상력이 사라지면 남의 것을 베끼거나 따라하는 수준이 그 사람이 오늘 수 있는 최고 높이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기존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지적 활동을 통해서 촉발 될 수 있다.
◆ 호학을 통한 인격수양
호학은 근본적으로 참된 사람만이 가져야 할 품성이다.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양심을 속이고 남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도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짝퉁’ 호학자들은 보통사람들에 비해 매우 위선적이다.
조선 말 최한기(崔漢綺) 선생은 인간과 사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 받는 원리로 작동 되기 때문에 ‘경계 없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배워라’고 가르친다.
중국의 사상가 왕양명(王陽明)은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며, 배움이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 만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자신 스스로가 변화되고 인격수양을 이루어 궁극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호학의 대가는 ‘자연과학세상’이라는 과학문화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는 박문호 박사다. 그는 전자공학 박사이지만 천문학, 물리학, 뇌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하다.
그는 자연과학 공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고, 삶의 질도 바뀌어 진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환경적 존재이며, 같은 가치와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고 더불어 살 때 인간은 본질적인 존재가 된다고 가르친다.
호학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좋은 방법이다. 사형수나 90살 노인에게도 호학은 희망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호학에서 나온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큰 꿈은 호학 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호학으로 완성된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 새봄에는 겸손한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호학의 즐거움을 누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