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中 디지털화폐에 어른대는 '빅 브러더'의 미소

2020-12-28 18:06
  • 글자크기 설정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1948년 조지 오웰이 생애 마지막 소설 <1984>를 탈고한다. 뉴스위크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이어 역대 세계 최고의 명저로 선정한 이 작품은 전체주의를 경고하는 세계적 대표작이다. 많은 사람이 한번쯤은 들었을 ‘빅 브러더’는 그의 작품을 손에 잡은 독자를 반드시 세뇌하겠다는 의지로 지겹게 등장하는 단어다. 그는 세계인에게 ‘빅 브러더’를 전체주의 상징으로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공교롭게 반공(反共)주의 입장인 조지 오웰의 대치점에서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자본주의를 경고하는 글, ‘공산당 선언’을 같은 해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발표한다. 두 작품은 인간을 핍박하고 감시하는 무엇인가의 출현을 주술처럼 읊고 있다. 1951년 폐결핵으로 사망한 조지 오웰에게 소설의 시점, 1984년은 다가오기 어려운 미래였는지 모른다. 그는 불과 36년 후 ‘빅 브러더’가 지배하는 끔찍한 세상을 상상한다. 조지 오웰이 ‘빅 브러더’를 통해 그리는 전체주의의 그림은 상당히 세부적이고 정교하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계급주의를 이용한 소수의 지배체제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 ‘빅 브러더’는 경제 시스템을 이용하고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을 곳곳에 설치해 당원들을 실시간 감시하고, 과거의 뉴스를 현재 상황에 맞춰 조작하며 사회를 통제한다. 그러나 1948년, 동시에 나온 두 작품의 경고는 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종식과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세계화(Globalization) 과정에서 깊이 묻혔다. 최근까지 세계는 암울하지 않고 좋아졌다는 증거를 한스 로슬링은 저서 <팩트풀니스(Facfulness)>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전 세계는 약 70년간 ‘성장’의 프레임 속에 풍요로워졌다. 이제는 사람들이 전체주의 공포를 거론하지 않는 세계가 되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소수가 아닌 대중에 휘둘리는 포퓰리즘에 세계가 빠지고 있는 듯하다.



언제나 역사의 변곡점은 예기치 않은 사건에서 잉태된다. 우리가 아주 익숙한 곳에서 ‘빅 브러더’의 유령이 다시 거닐기 시작한 것이다. 단서는 최근 자주 거론되는 중앙은행 전자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다. CBDC는 말 그대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다. 사실 이 금융용어의 난이도 때문에 대부분 사람은 먼 나라 일로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모든 이의 꿈이고 희로애락을 결정하는 ‘돈’에 대한 얘기다. 지금까지 지폐나 동전으로 발행하던 ‘돈’을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해서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가올 변화가 피부에 조금 와 닿는지 모르겠다. 편리하겠다고 생각할 독자들도 많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공산당이 계획 경제와 사회 통제를 실시하는 중국은 이 CBDC를 2014년부터 검토하기 시작했고, 최근 선전 등 4개 국제도시에서 시범 실시를 하며 조만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유로 지역 주요 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은행도 2019년부터 CBDC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2021년 파일럿 테스트를 한다는 계획이다. 주요 중앙은행들은 바쁜 행보를 보인다. 왜일까?



가장 중요한 배경은 민간 대형 IT기업들의 전자결제 성장세와 전자화폐 도입 움직임이다. 지금까지 민간이 주도한 디지털 지급결제가 최근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올해 코로나19는 이러한 추세를 일시적이 아닌 항구적으로 바꿀 전망이다. 중앙은행은 법정화폐와 은행예금을 이용한 신용창조과정을 통해 통화관리를 하는데, 민간 전자결제 성장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에 누수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 사례가 아마존 이펙트(amazon effect)이고 한편 중국은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인구 8억명이 사용하며 민간 결제 영향력의 폭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2019년 페이스북의 전자화폐 리브라 발행 선언은 중앙은행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사건이었다. 페이스북이 발표한 2020년 9월 말, 월간 이용자는 27.4억명이다. 전 세계 곳곳의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의 전자지갑 NOVI를 통해 전자화폐를 주고받고 아프리카 오지 등 금융 사각지대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가격의 불안정이 문제인 비트코인과 달리 리브라는 주요 통화가치에 연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발행한다. 만약 리브라가 제대로 유통하면 대규모 이용자 수에 의한 네트워크효과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페이스북에 이어 아마존, 애플, 구글 등도 전자화폐를 발행, 유통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즉각 서방 각국 중앙은행은 거래 승인에 반발하며 국제결제은행(BIS)을 중심으로 CBDC 발행 연구를 시작했다. 이제는 디지털 화폐를 민간 영역이 아닌 공공 영역으로 제도화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다.



서방 중앙은행의 공동 연구 결과에 의하면 CBDC는 전 국민이 중앙은행에 직접 예금계좌를 가지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 예금계좌를 통해 발행된 전자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고 중앙은행이 거래원장을 관리한다. 비트코인의 ‘분산원장’을 채용하지 않는 이유는 거래 소요 시간, 에너지를 절감하고 익명성에 의한 불법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디지털 법정화폐는 중앙은행 통화정책 효과를 높이고, 최근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 구제처럼 직접적, 선별적 재정정책 지원에도 100%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예금은행은 예금이 이탈(disintermediation)하며 은행 산업을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


CBDC가 도입되면 개인의 금융 거래 기록은 중앙은행이 보관한다. 중국처럼 사회 통제가 제도화된 국가는 CC(폐쇄회로)TV, 안면 인식에 이어 CBDC의 도입으로 완벽한 사회 통제를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 서방 경제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로 정부의 정교하고 강력한 대응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요구와 함께 불법 자금, 테러 방지를 위해 사회주의 금융시스템을 용인할 가능성이 크고 여기에 CBDC는 가장 매력적인 정책도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개인 금융거래 기록이 국유화될 경우 당신의 신용카드에 ‘빅 브러더’의 미소가 새겨질 날도 멀지 않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