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에게 월드컵 본선 무대가 꿈이라면, 국회의원에게는 국정감사다. 국감은 역량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운동장이다. 잘만 하면 전국적 인물로 뜰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감 스타를 달고 대선 고지에 올랐다. 그는 13대 국감에서 초선임에도 재벌과 관료를 상대로 압도했다. 5공 청문회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전두환을 향해 명패를 던지는 결기도 보였다. 국민들은 이런 노무현을 기억했다가 15년 뒤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반환점을 돌아섰다. 이번에는 다를까 했다. 한데 국민들 눈에는 도통 시원치 않다. 여당은 감싸기 급급하고, 야당은 정치공세에 골몰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과 관련해선 증인 채택을 놓고 볼썽사납게 충돌했다. 야당은 실체적 접근을 이유로 증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여당은 응하지 않았다. 결국 국방위 국감은 증인 한 명 없이 진행됐다. 언론은 이를 두고 맹탕 국감, 호위 국감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의 정치공세 또한 지나치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여당일 때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는 잊은 채 언제 그랬냐는 듯 공격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그들은 자료 제출을 막거나 툭하면 증인 채택을 보이콧했다. 2016년 국감에서 최대 이슈는 최순실 게이트였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최순실과 차은택을 비롯한 관련 증인 20명을 무더기 무산시켰다. “K스포츠재단은 의혹일 뿐이고,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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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당 모두 4년 전과 정반대되는 행태를 보인 셈이다. 이 때문에 매년 국감 무용론을 자초하고 있다. 국감다운 국감은 견제와 감시라는 역할에 충실할 때다. 그런데 여도, 야도 망각하고 있다. 국민들이 이런 국감을 왜 하느냐고 묻는 건 당연하다. 이제는 상시 국감을 포함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선진국 의회는 상시 국감을 제도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 국회는 보름여에 불과해 애초부터 물리적으로도 벅차다.
올해 국감은 7~22일이지만 공휴일과 휴일을 제외하면 11일에 불과하다. 반면 피감기관은 500여개로 현안은 산적해 있다. 그나마 기관장을 불러 묻고 답변을 듣는 형식이다. 의원 개인에게 주어진 질의 시간은 5분 정도다. 이러니 이목을 끌고, 튀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대기업 총수를 불러 망신을 주거나 유명인을 불러 관심을 끄는 건 고전에 속한다. 올해는 EBS 인기 캐릭터 ‘펭수’를 증인으로 신청해 여론몰이를 했다.
“저작권 지급은 정당한지, 대우는 합당한지, 근무 여건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라지만 인기 캐릭터를 활용해 튀어보자는 속셈은 뻔하다. 의도한 대로 해당 의원은 이름이 언론에 도배돼 일정 부분 성공했다. 심지어 한 언론사는 펭수가 국감에 출석하지 않기로 했다며 ‘단독’ 보도라고 표기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2014년에도 자유한국당 김용남 의원은 뉴트리아를 증인으로 채택해 의도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렇다 보니 국감이 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유명인과 동물, 이색적인 증인으로 국감을 희화화하고, 또 피감기관 일탈 행위를 폭로하느라 정책국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자유한국당 유인봉 의원은 정책국감의 본보기를 보였다. 비리 사립 유치원을 공개하고, 서울교통공사 고용 세습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정책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더 이상 의원 개인기에 의존하는 국감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정책국감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감사원을 국회로 이전해 상시 국감을 제도화하고,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국감이 끝나면 해당 기관은 지적된 사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국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 국감은 국민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그러니 증인 채택을 놓고 왈가불가할 일도 아니다. 판단은 국민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