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구례 ‘운조루(雲鳥樓)’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많은 이들은 나눔과 연대를 공감한다. 운조루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나무 뒤주로 유명하다. ‘타인능해’는 “누구든지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을 열 수 있다는 것일까. 바로 쌀뒤주다. 누구라도 뒤주를 열어 배고픔을 달래라는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를 담고 있다.
집 주인 유이조(1726~1797)는 낙안군수를 지낸 상류층이다. 그는 이웃과의 위화감을 최소화하려 애썼다. 지붕 위로 굴뚝을 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끼니를 거른 이웃들이 힘들어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대신 건물 아래 기단으로 구멍을 내 연기가 빠지도록 했다. 쌀뒤주는 사랑채 부엌에 두었다. 주인을 대면하지 않고도 손쉽게 쌀을 퍼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집주인은 다만 쌀독을 채울 뿐이다.
미국인 억만장자 찰스 척 피니(89)는 얼마 전, 생전에 전 재산을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이뤘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자선재단에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기부했다. 지난 40년 동안 기부한 돈은 80억 달러(약 9조3600억원). 노후자금 200만 달러만 남겨 놓았다. 억만장자임에도 그는 항공기 이코노미클래스를 고집했고, 1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찼다. 피니는 “빈털터리가 됐지만 더없이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재산의 99% 이상을 환원하고 있다. 이미 374억 달러(약 43조2900억원)를 내놨다. 빌 게이츠도 500억 달러(약 58조5000억원)를 기부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CNN창업자 테드 터너,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 호텔 재벌 배런 힐튼도 왕성한 기부로 주목 받는다. 이렇게 모인 돈은 가난한 사람들이 공짜로 치료받고, 대학을 다니는 원천이다. 허약해 보여도 미국 사회가 작동되는 원리다.
우리 주변에도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도 팥죽을 팔아 모든 돈 12억원을 기부한 81세 할머니 사연이 보도됐다. 서울 종로에서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이라는 팥죽집을 45년째 운영해온 김은숙씨다. 그는 “형편이 나은 사람이 돕는 건 당연한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라며 반문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쉽지 않다. 김씨가 기부한 돈은 워런 버핏의 43조2900억원, 빌 게이츠의 58조5000억원 못지않게 값지다.
스웨덴에서 발렌베리는 삼성보다 자본 집중이 심하다. 스웨덴 GDP의 30%,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40%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시기와 질투 대신 사랑받는다. 이익의 80%를 환원하고, 창업 이후 160년 동안 부패 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스톡홀름 시청 앞 크누트 발렌베리 동상은 스웨덴 국민들이 얼마나 발렌베리를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서울시청 앞에 삼성 이병철 회장 동상이 세워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마 격렬한 반대와 비난에 직면할 게 분명하다.
매일 아침 강남 삼성 본사 앞을 지나 출근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삼성과 이재용을 성토하는 시위대를 마주친다. 발렌베리와 삼성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조는 24년 재임 동안 무명옷을 입고 반찬은 다섯 가지로 제한했다. 또 즉위 직후 왕실 궁녀의 절반 가까운 300여명을 내보냈다. 백성들과 함께하겠다는 공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정조가 정치적 약점을 극복하고 안정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동력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요즘, 공감과 연대가 화두다. 전주에서 시작된 착한 임대료 운동도 공감과 연대다. 일상에서 공감과 연대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이웃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연휴 기간 중 만난 후배 사업가는 좋은 사례다. 그는 지난해부터 생판 모르는 초·중·고등학교에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퇴직자 1000명과 사회적 약자 1000명을 연결하는 멘토링 사업 후원도 계획하고 있다.
결국 ‘타인능해’는 서로 연대할 때 공동체는 더 단단히 유지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깨달음이다. 농부 작가 전우익은 생전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썼다. 그 말처럼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재미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