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이례적인 ‘사과 표명’에도 여전히 사건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10월 10일) 이전에 피살 사건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밝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일 제7기 제19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내년 1월 예정된 당 제8차 대회에 대비, 연말까지 ‘80일 전투’를 벌일 것을 결정했다.
이어 “정치국은 전당, 전국, 전민을 80일 전투로 총궐기시키기 위해 전투적 구호를 제정하고 전당의 당조직들과 당원들에게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무원 피살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인사를 인민군 ‘원수’로 진급시켰다. 북한군 장성은 원수, 차수, 대장, 상장, 중장, 소장 등 6단계로 구분되며 원수는 이 가운데 최고 계급이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을 인민군 원수 칭호를 부여했다. 북한의 대남 도발 사업 담당인 정찰총국 국장인 림광일도 상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했다.
변수는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대리의 한국 정착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에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게다가 이번 피격 사건과 유사했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북한이 공동조사에 응한 적이 없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당시 통일부가 북측에 현장 상황 파악을 위한 공동조사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거절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당시에도 우리 정부가 ‘천안함은 북한군 잠수정에서 발사된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북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발 리스크는 아니지만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도 악재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퇴원을 했지만, 오는 11월 3일 예정된 미국 대선 등을 감안하면 경색된 북·미 관계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악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언급 후 미국 측과의 논의를 시도하려고 했던 구상 자체가 흔들렸다.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으로 전격 연기됐다. 연기라는 표현을 썼지만 미국 대선 전까지의 시간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취소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 계획도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 3일 KBS 9시 뉴스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종전선언 채택의 중요성이 더 강조돼야 한다”면서도 “큰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안다.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처음 얘기가 나올 때부터 현실성은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구두(口頭) 사과’와 (남북 정상 간) 화상회의 등이 남북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상당히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는 등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를 주도했던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피살 사건 이후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재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서거 소식이 전해진 쿠웨이트의 셰이크 사바 알아마드 알사바 국왕 앞으로도 애도 조전을 보내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완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부가 북측에 제안한 군사통신선 복구 및 재가동 요청에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현재로선) 알려드릴 내용은 없다“면서 ”상황을 지켜보자”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