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불치병 'C형 간염' 발견 공로... 美·英 연구자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종합)

2020-10-0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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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하비 올터와 찰스 라이스, 영국의 마이클 호턴 공동 수상

인류가 C형 간염, 간경변, 간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단초 제공... 버록 블룸버그 이어 간염 연구로 두 번째 수상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해 전 세계 1억여명이 넘는 C형 간염 보균자의 생명을 구한 공로로 미국과 영국의 연구자들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5일(현지시간)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노벨위원회가 미국의 하비 올터(Harvey J. Alter) 국립보건원 박사와 찰스 라이스(Charles M. Rice) 록펠러대 C형 간염 연구센터 이사, 영국의 마이클 호턴(Michael Houghton) 앨버타대 바이러스 연구위원장을 올해(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하비 올터, 마이클 호턴, 찰스 라이스.[사진=노벨위원회 트위터 캡처]

노벨 생리의학상은 장기적이고 유기적인 연구가 강조되는 생물학과 의학의 특징을 고려해 하나의 연구를 두고 여러 명이 공동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례 역시 세 사람이 각자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에 기여한 점을 고려해 공동 수상이 결정됐다.
세 사람은 치명적인 질병인 간경변과 간암을 유발하는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 사람의 연구 이전에 A·B형 간염 바이러스가 발견됐지만, 간염 바이러스 확산의 주요 루트였던 혈액 매개 감염 사례는 대부분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 사람은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해 B형 간염과 함께 만성 간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형 간염의 원인 인자를 밝혀 냈고, 이를 통해 전 세계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한 혈액 검사와 신약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A·B형 간염은 1940년대부터 인류에게 알려져 있었다. A형 간염은 오염된 물이나 음식으로 전염되며, 주로 급성 간염을 일으킨다. B형 간혐은 혈액과 체액을 통해 전염되며, 만성 간염을 일으켜 간경변과 간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만성 간염은 개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간을 파괴하며, 매년 100만명 이상의 사망을 초래하는 만큼 결핵과 HIV(후천성면역결핍증) 못지 않게 전 세계적인 건강 문제가 되고 있다.
 

C형 간염 바이러스를 통한 만성 간염 경과.[사진=노벨위원회 제공]

감연 질환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치료하려면 질병의 원인 인자를 정확히 식별해야 한다. 1960년대에 들어 버록 새뮤얼 블룸버그 박사를 중심으로 B형 간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이를 통해 인류는 진단 검사와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공로로 블룸버그 박사는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에 재직 중이던 하비 올터 박사는 수혈을 받은 환자의 간염 발생을 연구하고 있었다. 블룸버그 박사의 노력으로 수혈을 통한 B형 간염 확산은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가 만성 간염을 호소하는 상황이었다. A형 간염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검사 방법도 당시 도입되었기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 간염의 원인 인자가 A·B형 간염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올터 박사는 동료와 함께 침팬지 실험을 진행해 수혈을 통해 만성 간염이 전파되며, B형 간염 바이러스 외에 다른 원인 인자가 만성 간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의학계는 올터 박사가 규명한 원인 인자를 비(非)A·B 간염원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후 10년 넘게 C형 간염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제약회사 시론에 근무하던 마이클 호턴 박사는 만성 간염에 감염된 침팬지의 혈액에서 발견된 핵산을 토대로 DNA 조각 모음을 만들었다. 대부분 침팬지의 유전자였지만, 그 속에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에서 나온 유전자가 섞여 있었다. 이를 토대로 가상의 바이러스 DNA를 복제한 후 하나의 활성화된 바이러스 DNA를 찾아낼 수 있었다. 호턴 박사는 이렇게 새로 발견한 바이러스 DNA를 C형 간염 바이러스로 이름 붙였다.

워싱턴 대학교에서 연구 중이던 찰스 라이스 박사는 이렇게 발견한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만성 간염을 일으킨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실험을 통해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주입한 침팬지가 만성 간염에 걸린 사람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1989년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실존하며, 만성 간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인자라는 게 입증됐다.

세 사람의 발견 이후 인류는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혈액 검사와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지속적인 치료제 개발로 C형 간염은 30년이 지난 현재 약 97%의 치료율을 보여주는 '차세대 치료약(Sofosbuvir)'이 개발된 상태다. 불치병이라 여겨졌던 C형 간염을 치료하고, C형 간염이 간암과 간경변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이에 C형 간염은 인류가 가장 빨리 극복한 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여전히 C형 간염은 전 세계에서 주요 건강 문제로 남아있지만, 세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인류는 C형 간염, 간암, 간경변과 같은 위험 질병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며, B형 간염 치료에 헌신한 블룸버그 박사에 이어 세 사람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세 사람에게는 900만 크로나(약 10억9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매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던 기존 노벨상 시상식과 달리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을 고려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하비 올터, 마이클 호턴, 찰스 라이스의 업적을 정리한 인포그래픽.[사진=노벨위원회 제공]

1935년 미국에서 태어난 올터 박사는 로체스터 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받은 후 시애틀대 병원에서 내과 수련의를 거쳤다. 1961년 미국 국립보건원에 합류해 임상센터 수혈 의학과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영국 출신인 호턴 박사는 1977년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론에서 연구를 하다가 2010년부터 캐나다 앨버타 대학에 합류, 바이러스학 연구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52년 미국 서부에서 태어난 라이스 박사는 1981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86년 워싱턴대 의과 대학에 합류했다. 2001~2018년에는 뉴욕 록펠러 대학의 C형 간염 연구센터의 이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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