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일본에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 것에 대하여 한국이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길었던 아베정권 기간에 한일관계가 순조롭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하나는 신임수상 스가가 ‘흙수저’ 출신이라는, 어찌보면 한국사회의 내부적 담론을 외부에 적용한 평가일 것이다.
번쩍이는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문이나 파벌의 지지도 없는 스가. 전후일본을 지배한 소위 55년체제를 끝낸 호소카와나 자신이 속하던 ‘자민당을 깨부순다’고 했던 고이즈미나 자민당에서 정권을 탈환해 온 하토야마 처럼 거대한 업적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가 왜 이렇게 인기와 기대를 모으고 있는가? 그 대답은 ‘바로 스가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스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말한 이유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스가이기 때문”인가? 말을 바꾼다면, “아 맞다! 지금 일본이 필요한 수상은 평범하고 꼼꼼하게 일 잘하는 수상이다’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졸출신에 지방의 건설업자였던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열광했던 심리와 유사하다. 스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가장 적극적인 계층이 여성, 특히 가정주부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속내를 잘 말하지 않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소극적인 일본인들이지만, 아버지나 할아버지 이름을 빌려 출세한 정치가들에 대한 염증이 이번에 스가에 대한 지지로 표출되었다고 본다. “아, 맞아! 우리의 삶을 챙겨준 수상은 유난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라는 자각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 자각의 구성요인은 평범성, 디테일의 중시, 조용한 인내심 등 바로 일본인의 성격인 것이다. 말하자면, 스가라는 수상은 지극히 평범한 일본인인 것이다.
데고와이 수상
일본인들이 형용사를 강조할 때 앞에 데(手)라는 한자를 붙이는 습관이 있다. 정치가 스가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을 압축하는 한 단어를 고른다면 나는 ‘데고와이’(手強い)를 든다. 영어로 tough이고 우리말로는 ‘만만치않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스가가 8년 가까이 모신 아베 신조에 대한 일본인의 전형적인 칭송의 표현인 갓꼬이이(格好良い、폼난다)와 거의 반대이다. 보수적인 일본인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아베의 이념적인 발언과 태도가 폼나는 것이였다면, 그 밑에서 스가가 8년 동안 보인 행적은 평범하지만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스가에 대한 공포심과 존경심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감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의 관료이다. 앞으로 스가가 얼마나 오래 정권을 유지할 지 모르지만, 그 기간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변화를 느끼는 것은 관료들이 될 것이다.
스가보다 학벌도 더 좋고 국가고시를 패스했으며 행정의 경험도 많은 고급관료들이 왜 스가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관저주도’라는 말에서 찾아야 한다. 2012년12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아베가 수상으로 있던 7년 10개월의 기간에 정착된 일본정치를 압축하는 말이다.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그 전에는 일본정치경제의 주도권이 수상관저가 아니라 관료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의 부흥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꼽히는 ‘일본주식회사’ (Japan, Inc.)형 발전모델의 메인엔진은 관료였고, 이를 돕는 보조엔진이 자민당과 재계였다. 그런데 젊은 아베가 들어서서 관료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그것도 자민당도 아닌 수상관저로 가져온 것이다.
그리그 안에서 그 권력의 운용을 실제로 담당한 것이 수상의 아내역女房役)이라고 불리는 내각관방장관(Chief Cabinet Secretary) 스가였다. 한국으로 비유한다면, 지지도가 높은 대통령 밑에서 8년간 강력한 비서실장으로 일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말이 없으며 꼼꼼하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그가 최고권력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가는 현재 일본의 정치가 중에서 거의 모든 사안에 관하여 가장 깊숙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 예로, 아베노믹스의 간판정책의 하나인 금융의 양적완화를 집행한 일본은행 총재 구로다(黒田東彦)와 팀워크를 이룬 것이 2013년 3월부터이다. 스가는 총리실을 총괄하며 7년 이상 구로다와 손발을 맞추어 온 것이다. 앞으로 재정과 금융에 있어 스가는 아베정권의 정책을 답습할 것이다. 아베를 존경해서라기 보다, 해오던 일이기 때문이다. 틀린 것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면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계속하는 정치와 정책은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수상이 중앙관청의 과장급 정도의 일을 꿰고 있다면, 이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스가의 독자적인 모습
외교보다는 내정, 내정에 있어서는 이념보다는 실질적인 사안을 선호하는 스가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디지털청이라는 관청의 신설이다. 일본에서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일본이 전자정부에 있어서 매우 뒤떨어져 있음을 안다. 은행에서 수백만원 정도의 송금도 10분 이상을 기다려야하고, 도심의 개발은 폐가의 주인이 파악이 안되어 진행할 수가 없다. 이러한 폐해의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통일화된 디지털체계가 없는 까닭이다. 행정의 디지털화는 스가정권의 ‘간판’에 해당하는 정책이 될 것이다. 이를 이끌 디지털청의 창설을 위한 기본방침이 금년도 중에 정해져서, 내년 1월에 소집되는 통상국회에서 관련법안이 제출되게 된다.
스가내각은 해외출장 다니는 내각이 아니라 ‘일하는 내각’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부각시키고자 한다. 한 예로, 저출산고령화가 일본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상태에서 ‘불임치료’ 문제를 정권차원에서 해결하겠다고 한다. 어찌보면 우선순위가 낮아 보이는 이 일의 추진이 오히려 내각의 지지를 올릴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야당의 설자리를 좁게한다. 바로 스가의 미시적, 실무적 접근이다.
중국과의 관계 안정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것을 동경하던 아베신조는 임기 중에 외교를 가장 중시한 일본수상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 반면에 국내파이고 외무대신의 경험이 없는 스가는 내정, 특히 경제에 우선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금년내에 스가가 신경을 써야하는 외교 내지 국방에 관한 사안은 국가안전보장전략의 개정과 자민당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사일방어에 관한 논의이다. 이 사안들은 아베가 추진하던 것들로서 스가는 사안의 내용을 잘 알면서도, 이를 적극 추진하고자 하는 의욕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거창한 외교전략의 새로운 문을 열기보다는 우선 시시콜콜한 국내문제에 집중하고자 할 것이다. 그에게는 외교에 관한 경험도 부족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기는 우선 1년이기 때문이다.
외교에 관하여 스가는 “관방장관을 하면서 일본과 미국의 수뇌 전회회담 총 37회 중에서 36회 동석했다. 외교문제에 관하여 나 나름대로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내 스타일의 외교를 해나가고 싶다”라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는 형식적인 발언일 수 있다. 다만,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정책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은 스가정권에서도 일본외교의 중요한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스가는 한국과의 관계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는 듯하다. 다만 그가 확실히 한 것은 관계개선의 “볼은 한국측에 있다”는 것이다. 즉, 징용공 등 문제에 관하여 국제법에 따르겠다는 종래의 아베의 입장을 관철하는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는 금년도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그 자리에서 문재인대통령과의 만남이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납치문제의 해결문제를 트럼프와의 최초의 전화회담에서 언급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트럼프는 ‘긴밀히 협조’한다는 언질을 주었다.
앞으로 1년이 안되는 임기 중에 납치문제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인다면 이는 스가가 차기 총재로 등장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납치문제가 어려운 경우, 평양의 외곽 등에 있는 일본인묘지에서 유골을 반환하는 사안도 검토될 수 있다. 이러한 사안을 가지고 일본정부가 접근할 경우, 김정은정권은 이를 전략적 카드로 활용할 유인이 충분히 있다. 특히, 추가투자가 절실한 원산개발에 대한 일본의 투자가 미국정부의 용인 아래 이루어진다면, 이는 일본과 북한의 접근을 쉽게 할 것이다.
스가에 따른 세대교체
스가가 인기 있는 수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가지는 큰 정치적 함의는 스가와 수상자리를 놓고 싸웠던 기시다, 이시바 등이 이제 과거의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다시 수상자리에 도전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 일본정치평론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 반면에 떠 오르는 삼인방이 고노 타로, 모테기 도시미츠, 가토 노부카츠이다.
행정개혁 겸 오키나와및북방정책 담당대신 고노타로(河野太郎)는 이번에 이 자리에 두번째 취임하게 된다. 아베정권에서 방위대신으로서 한국과 지소미아문제를 다루었으며, 지난 6월에는 이지스어쇼어 요격미사일 계획을 중지함에 있어 자민당과 상의를 하지 않는 등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자민당초기의 실력자 고노 이치로가 할아버지이고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사과를 표명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의장이 아버지인 정치가문 출신이다.
모테기 도시미츠(茂木敏充)는 아베정권에서 경제산업대신 등을 역임하고 외무대신으로 발탁되었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트럼프대통령이 ‘터프 네고시에이터’라고 부른 것이 최근의 일화이다. 컨설팅회사 맥킨지 출신으로 스스로가 다케시다파벌의 리더이기도 하다. 관방장관이자 납치문제담당대신으로 임명된 대장성에서 가토 가츠노부(加藤勝信)는 아베정권에서 스가를 보좌하는 관방부장관으로서 3년간 일하였다. 아베와 아주 가까운 우익적 인사인 가토가 앞으로 북한과의 납치문제 협상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인물을 포함한 스가의 내각구성은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한다는 평이다. 즉 파벌보다는 개개인의 능력과 경험을 중시한 실무형 인사였다. 또 하나는 성청의 전반적인 업무를 다시 쪼개 각 사안별로 책임을 질 수 있는 형태로 세심한 계산을 하여, 스가야말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정치로 구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8년 동안의 관방장관을 하며 몸에 익혔다는 것이 일본의 정치가들과 관료들로 하여금 경외 내지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