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는 한편으로 끊임없이 터지는 수많은 사건들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분단의 구조가 지속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이런 사건과 구조 사이에 연속되고 또 단절되는 국면들이 가로놓여 있다. 정치사적으로 보면, 약 20년간 박정희의 시대가 있고, 또 약 30년간 김대중의 시대가 그런 국면의 역사를 구성한다. 만약 우리가 국민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대중적 심성으로 현대사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국민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는 항상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스타들이 자신들의 시대를 만들어갔다.
대중적 영웅들이 출현하는 장들
전쟁으로 인해 무척 어려웠던 시기를 조금 지나 한국 사회가 막 일어서려고 하던 1960년대에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김기수, 프로 레슬러 김일은 국민들의 우상이었다. 흑백 TV가 막 보급되던 시기에 이들은 말 그대로 어려움을 견뎌내는 맷집으로 마침내 경기를 끝내고야 마는 ‘강력한 한방’을 보여주었고, 국민들은 이에 열광하면서 울고 웃었다. 암울한 시기였던 1980년대에 대중들의 영웅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차범근이었다. 그는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서독에서 한국을 알리면서 ‘차붐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의 경기를 직접 중계하는 방송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달리는 모습은 상상 속에 존재했고, ‘전설’처럼 나중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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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중적 영웅들이 활약했던 스포츠의 장은 몸과 몸이 직접 부딪치는 복싱과 레슬링으로부터 시작하여 공이라는 도구를 통해 몸의 힘을 전달하는 축구, 그리고 다시 공에 몸의 힘이 전달하는 도구를 사용하는 야구와 골프로 이동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계급적 취향에 관한 이론적 상상력에 입각한다면, 대중적 영웅들은 한국 경제의 발전과 위상의 변화에 상응하면서 종목을 바꾸어가며 출현했다고 할 수 있는데, 민족주의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축구는 이런 설명의 타당성을 조금은 유보하도록 한다.
손흥민의 시대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달리고 있는 2020년의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대중적 영웅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지 않고 지금을 '손흥민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사실 이 표현은 코로나 발생 이전에 이미 출현했다. 한 축구 칼럼니스트가 2018년 3월, 처음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였고, 그로부터 3개월 후에 카잔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독일과의 3차전을 보고, 한 스포츠 일간지도 “손흥민,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썼다. 2019년에도 이런 표현이 계속 사용되었다. 작년 2월, 유럽의 챔피언스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을 보고, 한국의 주요 케이블 TV들은 “지금 토트넘은 '손흥민의 시대'”라고 방송했으며, 4월에는 한 일간신문이 “증명했다 '손흥민의 시대'”라고 썼다.
현대 축구가 끊임없이 새로운 전략과 전술·포메이션을 발전시켜 왔지만, 축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의 발군의 돌파와 침투능력, 그리고 양 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폼을 잘 알고 있다. 지난 주말, 한 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가 속도를 통해 창의적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현대 축구의 정점에 서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흥미롭게도 우리들의 집합적 기억 속에 있는 대중적 영웅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다르다. 손흥민은 많이 웃고 여유가 있는 긍정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기대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지루한 일상을 깨뜨리고, 활력과 즐거움을 주는 손흥민의 시대가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