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즌.. 중국의 과학굴기가 두려운 이유

2020-09-20 16:49
  • 글자크기 설정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노벨상 시즌이 다가왔다. 스웨덴의 노벨 재단은 2020년 노벨상 발표를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지난 3월 17일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5일 생리의학상,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 그리고 12일 경제학상 순으로 발표된다. 개인적으로는 과학 분야 수상자를 주목한다. 생리의학상은 누가? 물리학상은 어느 분야에서 나올까? 또 화학상은?

한국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영예이겠지만, 과학자들을 취재하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건,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한국 과학자들이 분발하고 있다. 하지만 출발지점이 뒤처졌기 때문에 순서가 돌아오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한국인 수상자가 나올 거라고 확신한다. 주변국은 어떨까? 올해도 일본은 알프레드 노벨의 얼굴이 들어갈 메달을 거머쥘까? 일본의 저력은 놀랍다. 도무지 그 존재를 무시할 수가 없다.
중국은 어떨까? 올해도 소식은 없을까? 중국은 지금까지 노벨상(과학부문) 수상자가 없는 듯하다.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는 적지 않게 수상했으나, 중국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노벨의 영예를 품에 안지는 못했다. 중국 역시 출발을 늦게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다 출발이 늦지 않을까 싶다. 마오(毛)의 시대가 끝나고 덩샤오핑의 시대가 되어서야 과학 분야에 발동이 걸렸을듯하다. 출발은 늦었지만 중국 정부의 과학굴기를 위한 집념은 놀랍다. 과학자 개인 우대 분위기가 확연하다. 또 거대한 과학 프로젝트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서울대 기후학자 J교수에게서 들은 그의 경험담은 극적이었다.

J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일하다가 중국 대학을 택했다. 미국 연구실에서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동료가 광둥성 심천(선전)의 남방과학기술대학을 추천했다. 남방과기대에 가보니 학장은 미국대학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과학선진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해외 두뇌를 중국으로 유치해온 것이다. 학장은 J교수에게 “여기 있는 동안에 맘껏 연구하라. 전폭 지원하겠다. 당신이 논문을 많이 쓰면 우리는 행복하다. 또 언제든지 한국에 간다고 해도 좋다”라고 말했다.

실험실을 꾸리라며 학교측은 10억원 준 것 같다(한국은 이공계 신임 교수에게 2억원을 주는 대학이 얼마나 될까 싶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돈이었다. 연구비가 필요할 때는 서류 한 장만 써내면 됐다. 어떻게 썼다 하는 사후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됐다. 논문 내면 그걸로 끝이었다. 논문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중국말을 못하니 통역 비서를 붙여줬다. 그의 실험실에서 일하는 박사후연구원 연구비는 학교가 따로 대줬다(한국은 교수가 자기 연구비에서 떼서 준다). 2년 있다가 학교를 떠날 때 보니 학교측이 지원한 돈은 거의 안 썼다. 연구비가 나오는 곳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방과기대에 자리를 잡고 가을이 되었을 때, 대학측이 그를 중앙정부의 ‘천인재‘ 후보로 추천했다. 중국 정부는 여러 분야 인재를 선발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천인(千人)계획’(Thousand Talents Program)이라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연구비를 풍족하게 제공, 특히 해외 과학기술 인재가 귀국하면 연구에 곧장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만난 한국의 물리학자-화학자들은 중국의 ‘천인재’ 프로그램을 부럽기도 하고, 무섭다는 식으로 많이 얘기했다. J교수는 내가 만난 첫 번째 ‘천인재’였다.

천인재는 소속 대학이 추천한다. 재직 중인 교수나, 외국에서 스카우트해올 인재를 대상으로 한다. 개인이 지원하는 게 아니다. 서류를 보내면, 중국 과학원이 1차로 서류 심사를 했다. 그리고 면접 날짜를 알려왔다. 그해 12월 베이징에 가서 면접을 보았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엄청 큰 베이징의 호텔에서 발표했다. 큰 홀에 심사위원 십여 명이 앉아있었다. 연구 관련 발표를 했고 질문을 받았다.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다음해 1월 천인재로 선발되었다는 증명서가 날아왔다. 중국의 지방대학은 천인재가 선발되면 바로 정년을 보장한다. 베이징의 칭화대학과 베이징대학은 부교수로 승진시킨다. J교수가 천인재로 선정되니, 돈을 엄청나게 줬다. 액수를 말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또 광둥성 정부가 천인재가 된 걸 축하한다며 축하금을 보내왔다. 광둥성에 천인재가 있다는 건 자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축하금 액수는 천인재가 주는 돈의 10~20%였다. 그뿐이 아니다.

천인재 관련 외에, 남방과기대가 속해 있는 심천시가 돈을 따로 줬다. ‘선전 고위 인재(Shenzhen High Level Talents)’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현금으로도 줬다. 그는 그 많은 연구비를 다 써보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오려고 하니, 학교측이 붙잡았다. 학장은 세 번이나 만나자고 했다. 대학부총장은 두 번이나 만나자고 하더니 “다시 생각하라”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대학 총장도 만나야했다. 총장이 놀라운 얘기를 했다. ”교수님이 원하는 월급, 그리고 홍콩에 집을 구해주겠다. 중국에 살기 싫으면 홍콩에서 출퇴근하라. 차량도 제공하겠다. 원하는 월급 액수를 여기에 적어라“. 백지수표를 주겠다는 장면은 영화에서만 나오는 것이었는데, 그런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래서 연봉 15억원을 요구했다. 그걸 본 총장은 ”5년간 연 6억원을 보장하겠다“라고 수정 제의했다. 학교 규정이 있어 그 이상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연봉 6억원과 다른 집, 차 제공 제안은 어마어마했다.

남방과기대 총장은 이런 말도 했다. ”서울대 가면 용꼬리 되는 거 아니냐. 여기에서 뱀 대가리해라. 우리는 교수님을 슈퍼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서울대에 가면 그냥 한 명의 교수일 뿐이지 않겠느냐.“ J교수는 그때 감동했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돈을 많이 준다고 연구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국 자연과학자들은 열심히 하고 있는듯하다. 내가 올해 만난 한국의 화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 경계론을 폈다. 중앙대 화학과 조은진 교수는 유기합성 방법론 연구자. 그는 자신의 분야에 중국 연구자들이 수없이 밀고 들어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했다. 그 자신 중국 화학자의 공세를 피해 다른 분야를 찾아가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강원대 화학과 이필호 교수는 “중국 화학 수준이 이제 한국보다 높아졌다. 더구나 그들의 연배는 40대다. 젊은 그들이 무섭다”라고 말했다.

뿐인가? 과학 선진국인 미국의 연구 성과를 값싼 비용으로 들여오기 위해 은밀히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러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화학과 과장 찰스 리버 교수 건이다. FBI는 지난 2월 하버드대학의 세계적인 화학자를 구속 기소함으로써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중국 당국은 찰스 리버 교수에게 연구비를 대고, 하버드대학 실험실과 같은 실험실을 중국에 내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중 상당 시간을 중국에 와서 머무르며 중국 학생을 지도하도록 했다. 하버드대학 교수는 미국 정부의 연구비를 받아 연구했는데, 그런 연구 성과를 중국이 값싸게 빼먹으려 한다고 미국은 비난하고 있다.

개인 차원을 넘어 중국은 야심적인 빅 사이언스 프로그램도 여러 개를 갖고 있다. 입자물리학과 핵물리학 실험을 위해 100㎞ 지하 원형 터널을 만들고 그 안에 입자가속기를 설치하는 계획이 유명하다. 중국 내 몇 곳에 후보지를 검토했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후보지로는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와 산시성 옌안(延安), 광둥성 산웨이(汕尾)가 거론되고 있다. 2022년에 첫 번째 시설 건설에 들어갈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지난해에 있었다.

현재 지구촌 최대의 입자가속기는 스위스 제네바 지하에 있다. 유럽국가들이 세운 유럽원자핵연구기구(CERN)가, LHC라는 입자가속기를 2008년부터 가동하고 있다. 중국이 짓겠다고 하는 건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강입자충돌기)의 차세대 모델이다. CERN도 100킬로미터 입자가속기를 지으려고 하고 있다. 미국은 비용을 이유로, 입자가속기 경쟁 대열에서 이미 오래 전에 탈락한 바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차세대 입자가속기(SSC)를 짓다가 중단했다. 그래서 유럽의 CERN이 고에너지 물리학의 세계 중심으로 부상한 바 있다. 2012년 힉스 입자를 발견한 곳이 CERN이었다. 중국이 100㎞ 길이의 입자가속기를 만든다면, 유럽과 고에너지 물리학의 중심을 놓고 경쟁과 협력을 하는 게 된다. 이 시설이 들어서면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동아시아의 존재감은 급상승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중국의 과학 굴기를 접하는 외부인의 심사는 복잡하다. 과학 논문 수에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중국의 연구비(R&D) 규모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박수를 치기보다는, 그래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은 이웃 나라와 영토 분쟁을 많이 일으키는 등 최근에 갖게 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고, 홍콩의 민주주의 시계를 뒤로 돌리고 있다.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에서 떨어져 있는 행동들이다. 인류가 나아가야할 미래를 보여주지 않고, 과거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과학굴기는 주변국은 물론 지구촌의 다른 나라에게 위험천만하게 보이고 있다. 아이가 손에 위험한 장난감을 쥐고 있는 느낌이다. 중국 정부는 그걸 모르는지 아는지, 제 길을 가고 있다. 머지않아 어느 해 노벨시즌이 되면 중국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도 나오겠지만, 그때쯤이면 그 중국인 수상자가 지구촌의 존경과 신뢰를 듬뿍 받을 수 있을까는 현재로서는 회의적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