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도입 3년] ②대의 민주주의 실현부터 갈등·정쟁의 場까지

2020-08-25 08:00
  • 글자크기 설정

10명 중 7명 긍정 평가…답변 만족도는 절반 수준

대통령 탄핵 및 옹호 등 특정 집단 여론몰이 수단

원론적 답변·여론에 등 떠밀린 졸속 입법 부작용도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국민 10명 중 7명은 국민청원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6월 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국민청원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가 ‘국민청원은 정부와 국민과의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국민청원에 계속 참여할 생각’이라는 응답률은 69%로 집계됐다.

다만 응답자의 42%가 ‘국민청원 공식 답변에 만족한다’고 조사돼 답변에 대한 만족도는 저조한 편이었다.
국민청원을 바라보는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조사는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방법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무작위추출을 전제할 경우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2.83%포인트이다. 자세한 조사 내용은 해당 여론조사기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론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청원 제도는 대의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갈등·정쟁의 장이라는 부정 평가가 엇갈린다.

참여 인원이 20만명을 넘어선 청원 글에 대해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가 답변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입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지만 ‘아니면 말고 식’의 청원이나 정치성이 짙은 민원 등도 무분별하게 올라오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한 토론회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슈를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면서 “(여론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 차분한 숙의 과정을 건너뛰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집단의 여론몰이 수단으로 국민청원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대통령님을 응원합니다’와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합니다’의 맞대결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두 청원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각각 약 150만명과 146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이는 국민청원 도입 3년차 동의 수 순위에서 3위, 4위에 해당된다.

앞서 지난해 4월 22일 올라온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에는 183만1900명, 같은 달 29일 올라온 ‘더불어민주당 정당 해산청구’ 청원에는 33만7964명이 각각 동의했다.

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에는 당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국론이 갈렸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반드시 해달라’는 청원에는 75만7730명,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용을 반대한다’는 청원에는 30만8553명이 각각 서명했다.

가뜩이나 현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청원에 올리면 청와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갈등을 조정할 국회가 약화되고,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이 강화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청와대는 민감한 청원에 대해서는 답변 시기를 조율하며,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기도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국민청원과 관련해 “대의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한 몫 했다는 평가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촉발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 답변이 원론적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부분 ‘재발을 방지하겠다’, ‘보완하겠다’ 등 국회 입법 등 청와대가 직권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3주년 기념 SNS 메시지에서 “정부의 답에 만족하지 못한 국민들도 계시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론에 떠밀려 ‘졸속 입법’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었다. 스쿨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민식이법’이 대표적이다.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과 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계기로 ‘민식이법’ 찬성 여론은 급속도로 증폭됐다.

그 결과,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여야 경쟁적으로 제출한 법안 내용이 뒤섞였다. 과실 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의 형량이 고의 살인과 비슷해지는 등 법체계와 맞지 않고 형벌의 비례성이 깨졌다는 모순에 직면한 것이다.

이후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故) 민식군의 부모에게 번졌고, 유족은 유튜브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채널 운영자 등을 경찰에 고소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11일 유튜브 운영자 최씨는 ‘민식이법 가해자, 지인통화 내용’이라는 제목으로 민식군의 부모가 7억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다음 날인 12일에도 최씨는 7억원 요구가 사실이라며 사건번호를 공개하는 영상을 채널에 올렸다.

민식군의 아버지인 김씨는 “문제의 민식이법 관련 영상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며 “무슨 목적으로 우리 민식이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극심한 고통을 주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