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유통 산업 上] 잃어버린 10년…"'유통산업발전법'은 누구를 위한 법?"

2020-07-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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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채널, 유통법 개정과 함께 신규 출점 제한 및 의무 휴업 등으로 경쟁력 잃은 상황

대형마트는 죽고, 전통시장은 성장하지 못하고…법안 근본 취지 무색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국내 경제의 주요 지탱 축인 유통 산업이 오프라인 채널의 침체와 함께 벼랑 끝 위기에 몰려있다. 최근 수년간 유통가의 전반적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한 이유도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유통 산업에 직접적인 족쇄로 작용한 탓이다. 이들 간의 대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 같은 오늘날 오프라인 유통 채널 위기의 중심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이 자리한다. 유통 산업의 발전 및 진흥 도모, 건전한 상거래 질서 확립, 소상공인 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제정된 이 법은 원래 취지가 훼손된 채 역설적으로 현재 오프라인 업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잃어버린 10년…"'유통산업발전법'은 누구를 위한 법?"
(中) 소비자에게 피해 고스란히 전가…소비 '선택권'도 박탈
(下) 이념 논리는 그만…이제는 족쇄 풀 때

유통 업계는 이구동성으로 10년 전 제정된 유통법의 대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국회가 시장 전반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 논리에만 매몰돼 대형마트를 이끄는 대기업을 '악(惡)', 소상공인 중심의 전통시장을 '선(善)'으로 규정한 결과가 오늘날의 유통 산업 위기를 초래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시장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않고 포퓰리즘 측면에서 탄생한 이분법적 법안이다 보니 시간을 거듭할수록 부작용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최근 10년간 황폐화된 유통 산업이 증명한다. 대형마트의 몰락과 함께 일자리가 급속도로 사라지며 내수가 죽고,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통시장마저도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법망을 피한 이커머스, 식자재 업체들은 법망을 피하며 유통 업계의 또 다른 공룡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의 판도가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정부는 예전 프레임에 갇힌 채, 오히려 오프라인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고 나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6일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누구를 위한 산업 발전 법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하며 "지난 10년간 대형마트는 죽고, 전통시장은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이 법과 아무 관련 없는 이커머스만 승승장구하는 상황이 됐다. 유통법의 틀이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이라는 10년 전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기존 법안만으로도 고사상태인데…규제 더욱 강화하려는 국회

오프라인 유통 업계는 지난 2010년 유통법 개정에 따라 대형 마트의 신규 출점이 제한된 것을 시작으로, 월 2회 의무 휴업, 영업시간 축소 등 지난 10년간 끊임없는 규제에 시달려 왔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 시간을 직접적으로 제한해 전통시장으로 수요층을 유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이와는 달리 사실상 이들 간 상생효과는 현재까지 제로에 가까운 상태다.

문제는 오프라인 업계가 가뜩이나 고사상태에 놓여 있는데, 강도 높은 추가 규제가 줄줄이 예고돼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규제를 골자로 한 유통법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 65건, 20대에서 42건이 발의됐고, 출범 1개월을 맞이한 21대 국회에서도 규제 범위가 확대된 개정안만 10여건이 상정됐다.

기존 대형마트, SSM의 규제 강화 연장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다. 대형마트에 국한됐던 의무 휴업, 입점 제한 등 규제를 복합쇼핑몰, 백화점, 교외형 아웃렛, 면세점, 전문점, 프랜차이즈 체인점까지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마트 출점 시 제출하는 지역협력계획서 심의를 강화하며 경우에 따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사실상 대기업이 운영하는 채널의 영업, 출점을 모두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추후 현실화될 경우 유통 업계는 사실상 회복할 동력을 완전히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법안들이 의석 180석을 차지한 '거여(巨與)' 여파로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특히 복합쇼핑몰의 경우 동일 업태라 해도 점포 별로 등록 기준이 모두 달라 추후 법안 적용의 논란마저 예상된다.

◆ 내수와 고용 직결된 유통업…중요성 인식 못 하는 정부

유통법 개정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일자리 감소, 국내 실물 경기 위축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이 영업시간, 출점 등 규제를 받을 경우 직접 고용된 인력은 물론, 협력사, 연관 관계자 등의 연쇄적 피해도 불가피하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마트는 점포 1곳의 직간접 고용 창출 인원이 약 400~500명 정도이며, 대형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은 10배 수준인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작년 기준 마트 3사의 중소납품업체 수는 6800여개, 입점 소상공인의 점포 수가 6000여개임을 감안하면, 규제가 계속 이어질 경우 대형마트 폐점 만으로도 산업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막대하다.

이미 오프라인 업계는 매장 철수, 매각 등에 나서며 몸집을 줄이고 있는 상태다. 연초 롯데쇼핑은 연초 오프라인 점포 700여개 중 휴일이 낮은 200개 가량 점포를 2~3년 내로 정리하겠다고 밝혔고, 홈플러스도 최근 안산점, 둔산점 등의 자산유동화를 결정한 바 있다. 이마트 역시 작년 3개점을 폐점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복합쇼핑몰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더욱 심각한 타격도 우려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유통규제에 따른 영향 조사'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이 월 2회 휴업 시 6161개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연간 매출은 4851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의무 휴업이 백화점, 쇼핑센터 등 전 오프라인 채널로 확대될 시 5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복합쇼핑몰 규제는 곧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매출 감소로도 이어진다. 복합쇼핑몰 매장을 구성하는 70~80%가 중소기업으로 채워져 있는 탓이다. 유통법 개정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는 셈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합쇼핑몰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결국 소상공인들이 주축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복합쇼핑몰 규제는 이들 채널의 내부 역학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법안이 현실화될 경우 중소기업의 존립을 뒤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커머스·식자재마트, 규제 사각지대 등에 업고 승승장구…형평성 문제 제기

지난 10년간 정부의 규제로 오프라인 유통의 침체가 가속화된 사이, 이커머스 업체들은 이렇다 할 규제 없이 급성장세를 보인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실 이렇게 이커머스 업계가 천적 없이 성장하며 시장의 중심 축으로 안착한 데는 형평성에 어긋난 정책 탓도 크다. 이미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 구도가 아닌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시장이 재편된 지 오래지만, 정부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대형 채널 죽이기에만 골몰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 2010년 25조원 규모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35조3000억원 규모까지 급격히 성장했다. 이대로라면 이커머스 시장은 오는 2022년이면 190조원까지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좁은 면적에서 농·축·수산물 등 각종 식재료를 파는 식자재 마트도 규제망을 피해 소리 없이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원래 고객인 자영업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까지 대상으로 하는 식자재마트는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등 사실상 일반 대형마트와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별다른 규제는 받고 있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유통법이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모두 잡지 못하는 최악의 악법 역할을 하고 있다"며 "오히려 법망을 피한 이커머스, 식자재마트 등이 그 틈에 힘을 키우며 빠르게 시장 잠식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불공정 경쟁을 도리어 부추기는 모양새"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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