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하도급 업체를 압박해 얻은 기술자료를 유용해 경쟁사에 제공하고,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한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핵심 부품인 피스톤 공급을 이원화하기 위해 20년간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하도급업체 A사로부터 강압적으로 기술자료를 취득했다. 이를 A사의 경쟁업체인 타업체(B사)에 제공해 피스톤 생산을 이원화한 후 단가 인하를 요구했으며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했다.
A사는 1975년 설립된 엔진부품 전문기업으로 세계 3대 피스톤 메이커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선정한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에 선정됐다.
현대중공업은 A사에는 빈 양식을 보내 자료 작성을 요청했으며, B사에는 A사가 관련 내용을 모두 기입한 자료를 전달했다. 실제로 공정위 조사 결과 B사가 작성한 자료에는 A사가 작성한 것과 동일한 오기가 동일 위치에서 발견됐다.
현대중공업은 A사에게 이원화 과정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A사는 현대중공업에 제공한 자료가 B사로 넘어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원화 후에는 A사에 단가 인하 압력을 넣어 3개월 동안 단가를 11% 인하했다.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A사와 거래를 끊었다.
현대중공업 측은 B사에 제공한 자료는 자신이 제공한 사양을 재배열한 것에 불과하며, 단순 양식 참조로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하도급 관계에서 원사업자가 사양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B사에 제공한 기술자료들에는 공정 순서와 품질 관리를 위한 공정관리 방안 등 A사의 기술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기술 자료를 요구할 때 제품에 불량이 있음을 언급하거나, 심지어는 목적을 언급하지 않고 작업표준서와 지그(Jig) 개선자료를 요구했다. 작업표준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양산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A사에 기술자료를 요구한 것은 하자 발생에 따른 대책 수립 목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하자가 발생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요구도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하자 발생 제품에 대한 요구도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어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은 또한 A사에 '4M(Man, Machine, Material, Method)' 관련 보고서와 검사성적서, 관리계획서를 요구하면서 법정 서면을 교부하지 않았다. 포괄적인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제공하지 않을 시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향후 발주물량을 통제하겠다고 해 A사가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공정위는 자료 요구의 사유는 인정되지만, 법정 사항을 사전에 협의해 기재한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점은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번 현대중공업의 기술자료 유용행위 조사는 특허청 기술전문가 풀을 활용한 기술성 분석으로 판단의 전문성을 높였다. 특허청 전문가들의 기술자료 분석에 근거해 전문성을 담보하고, 기술성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최소화했다.
문종숙 공정위 기술유용감시팀장은 "A사는 피스톤 관련해서는 3대 업체 중 하나로 기술력을 가졌는데도 대기업의 겁박에 응할 수 밖에 없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술자료가 경쟁사에 넘어갔다"며 "이번 과징금 및 시정조치로 사업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기술자료 유용행위 근절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