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새벽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비극의 원인으로는 지난 8일 경찰에 접수된 박 시장의 전 비서 A씨의 ‘성추행 의혹’ 고소 사실이 지목된다. A씨는 2015년부터 서울시청 공무원로 일했던 박 시장의 전직 비서이다. 그의 고소장에는 박 시장한테 지속적으로 당했던 성추행 사실이 자세히 기재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시장이 피소 이튿날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고소 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종결됐다.
‘민주화 운동 한복판에 섰던 인권변호사’, ‘불모지에서 시민운동을 일궈낸 시민운동가’, ‘3선 최장수 서울시장’, ‘유력 대선주자’였던 그이기에 성추행 혐의 피소와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이다.
이런 가운데 ‘성희롱은 불법임’을 알린 그의 과거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른바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이다.
1993년 8월 23일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 ‘한 교수의,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을 밝힙니다’라는 규탄으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자보를 붙인 우 모씨는 자연대 화학과 유급조교로 NMR기기 담당자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로부터 출근 중지 통고를 받았다.
우씨의 말에 의하면 교수의 일방적 해임 통고는 ‘교수님 마음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다른 조교로 교체하려는 실력행사였다는 것이다. 해당 교수는 NMR기기에 대한 연수를 하는 동안 교육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팔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듯이 쓰다듬거나 등 뒤에 서서 양팔을 내밀어 포옹하는 자세를 취하는 등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단둘이 사람들 모르게 입방식을 따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순식간에 서울대 내에서 가장 심각하고 진지한 화제로, 대학가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일대 사건으로 비화됐다. 당시 박 시장은 우 조교가 성희롱을 당한 사연을 듣고 무료 변론을 자처했다. ‘직장 내 성희롱’을 소재로 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6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신 모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살펴보면 “이른바 성희롱의 위법성 문제는 종전에는 법적 문제로 노출되지 아니한 채 묵인되거나 당사자 간에 해결되었던 것이나 앞으로는 빈번히 문제될 소지가 많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불법행위”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 시장은 ‘성희롱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평소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박 시장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일화도 있다. 미투 열풍이 한창이던 2018년 3월 중앙일보 강민석 기자가 박 시장을 인터뷰했다. 강 기자는 “우 조교 사건 때...” 라고 얘기를 꺼냈다가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박 시장은 뭐든 피해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우 조교 사건이 아니라 신 교수 사건이라고 해야지요. 저도 어디서 그렇게 얘기했더니 여성단체들이 딱 시정시켜주더라고요.”
이런 그였기에 비서를 상당기간 성희롱·성추행 했다는 의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10일 박 시장의 유서가 공개됐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