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까지만 해도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추미애 장관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제멋대로 행동하는데도 장관이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무엇보다 2010년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증언 강요·조작’이 있었으며, 거짓 증언과 가짜증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집체교육’을 시켰다는 폭로가 잇따르는데도 검찰이 수사를 미적댄 것이 결정적이었다.
◆“추미애도 검찰에 순치된 것 아니냐?”
이날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것들 중에는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서 있었다는 증언강요·조작 의혹이 포함돼 있었다.
한 전 총리는 건설업자 한만호씨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핵심증거는 건설업자 한씨의 검찰진술조서였는데, 막상 한씨는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떠벌이고 다녔다"는 재소자 동료들의 진술을 받아내 증거로 제출했고, 법원은 이를 근거로 한 전 총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최근 증언을 했던 재소자들이 "당시 검찰의 강요로 거짓진술을 했다"고 잇따라 폭로하면서 사건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증언조작을 강요한 검사들을 처벌해달라"며 직접 법무부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4·15 총선 직전 불거진 채널A와 한동훈 검사의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가 윤 총장의 방해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설전의 원인이었다. 검사와 기자가 공모해서 선거에 개입하려 한 사건인데도 두달이 지나도록 압수수색 하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불만의 핵심이었다. 증거가 모두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빗발쳤다.
두 사건 모두 대검 감찰부에서 맡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강제로 사건을 빼앗아 서울중앙지검에 내려보내 버렸다. 이 과정에서 감찰부장이 반대하자 ‘항명’ 운운하면서 여론전을 벌였다. 심지어 ‘검언유착 사건’은 수사에 진척이 생기자 ‘전문수사자문단’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수사 자체를 중단시키려 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동훈 검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장난을 치고 있는데 추미애 장관은 뭐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실제로 21대 국회의 첫 법사위원회 회의에서는 “장관이 검찰에 순치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추 장관을 아는 사람들은 느긋했다. 오히려 ‘좀 기다려 보라’며 조급해하는 여권 일부인사들을 달래기도 했다.
'추 장관이 절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는 것이 측근인사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원래부터 고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인데, 당대표와 장관을 거치면서 치밀함까지 생겼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환노위원장 시절 당내 반발 속 '노조법' 통과
추 장관의 ‘고집’은 일찍이 잘 알려져 있었다. 소신이라고 생각되면 그 누구와의 싸움도 결코 마다하는 법이 없다.
첫째 일화는 10년 전인 2009년 12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었던 추 장관은 여당인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과 함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전격 통과시켰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강제 단일화를 골자로 했다.
노조 힘빼기라며 노동계가 반발한 것은 물론 당시 민주당 안팎에서도 분노가 들끓었다.
환노위 민주당 간사였던 김재윤 전 의원은 “추 위원장에 의해 일방적으로 날치기 처리됐다”고 분노했고, 이강래 원내대표는 “당을 깔아뭉개고 한나라당과 손잡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묵인될 수 없다”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추 위원장이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2010년 2월 2일 당원자격정지 2개월 징계를 결정했다. 그러나 추 위원장은 “당 지도부가 징계를 고집한 일은 민심과 산업현장의 미래를 외면한 안타까운 일”이라며 “징계에 개의치 않겠다”고 당찬 모습을 보였다.
역시 환노위원장 시절 ‘노동유연성’을 놓고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 고용의제 기간을 4년으로 늘리려 했지만, 추 위원장은 기존안인 ‘고용의제 기간 2년’을 밀어붙여 결국 통과시켰다.
◆반발할수록 ‘외통수’··· 다 계획이 있었다?
이번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맞대결 과정을 보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추미애’가 보인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소신인지 고집인지 헷갈리는 부분은 여전하지만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한 상황이 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도대체 장관은 뭐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윤 총장이 무리수를 뒀다 싶자 곧바로 개입을 시작했고, 일단 개입이 시작되자 상대방이 대비책을 세울 틈을 주지 않고 거세게 밀어붙였다.
윤 총장과 검찰이 반격을 시도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외통수로 몰리기만 했다. 당장 추 장관의 지휘가 검찰청법을 위반했다며 검찰이 꼬투리를 잡자 ‘검찰공무원 행동강령’을 들이밀며 입을 다물게 만들었던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과거의 추미애에게는 고집만 있었다면, 현재의 추미애에게는 고집뿐만 아니라 ‘계획’도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아킬레스건'··· "정치 인생 가장 큰 실수"
추 장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다가 정치적 부침을 겪기도 했다. 추 장관은 이를 두고두고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계획’이 생긴 것도 당시의 뼈저린 후회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추 장관은 당초 탄핵 반대입장이었지만 막판에 변심해 탄핵 의결에 동참했다. 나중에 “총선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대국민 협박을 한 것을 보고 탄핵하지 말자고 할 수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일로 민주당은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고 추 장관 역시 지지자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삼보일배’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민심은 차가웠고, 추 장관은 17대 총선에서 낙마했다.
훗날 정치적으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노 전 대통령 탄핵 이력은 추 장관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린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나설 당시 추 장관은 노 전 대통령 탄핵 찬성과 관련해 “분명 잘못한 것이고 제 정치 인생 중에 가장 큰 실수이고 과오”라고 했다.
◆민주당계 최초 2년 임기 마친 당대표··· 文정부 '적폐청산' 후원자 역할도
추 장관은 2016년 8월부터 2018년 8월까지 민주당 당대표를 지냈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당대표가 임기 도중 물러나지 않고 2년 임기를 마친 것은 추 대표가 처음이다.
임기 막판 치러진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당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시·도지사 17명 가운데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가운데 151명의 당선자를 내는 기염을 토했다.
당대표를 마친 뒤 일각에서는 추 장관이 이낙연 총리에 이어 국무총리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누가 봐도 총리급 인물이자 잠재적 대권후보였다.
그런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정치권에서는 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조국 전 장관을 낙마시키고 정권의 핵심부에 칼을 겨눈 윤석열 총장과의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스스로 떠맡았기 때문이다.
단박에 대권후보군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은 인물인 데다 자칫 온갖 책임을 홀로 뒤집어써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최종 결과가 나왔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2월 검찰인사에 이어 윤석열 검찰총장의 기세를 두 번이나 꺾으면서 추 장관의 주가는 치솟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만만찮은 고집에 치밀한 계획이 더해진 결과였다.
정치권에서는 추 장관이 큰 꿈을 꾸기 위해서는 “고집과 계획에 비전을 더해야 할 것”이라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