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대웅제약은 “명백한 오판”이라며 “허위자료를 밝혀 최종 판정에서 반드시 승소하겠다”고 반발하면서 '보톡스 전쟁' 2라운드가 격화될 전망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ITC는 6일(현지시간)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 예비 판결에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미국명 주보)’가 관세법 337조를 위반한 불공정경쟁의 결과물이며, 미국시장에서 배척하기 위해 10년간 수입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를 절취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것은 맞는다며, 나보타의 10년 수입 금지명령 권고 조치에 나선 것이다.
ITC는 이번 예비판결에서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 공정은 보호돼야 하는 영업 비밀이며, 메디톡스와 미국 파트너사 엘러간은 각각 영업비밀에 대해 보호되는 상업적 이익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도용한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메디톡스는 5년째 이어지고 있는 보톡스 전쟁에서 우선 승기를 잡게 됐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이번 ITC 행정판사의 판결로 경기 용인의 토양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발견했다는 대웅제약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임이 입증됐으며,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해 나보타를 개발한 것이 진실로 밝혀졌다”며 “대웅제약이 수년간 세계 여러 나라의 규제 당국과 고객에게 균주와 제조과정의 출처를 거짓으로 알려왔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ITC의 판결 결과를 토대로 ITC 소송 외 국내에서 진행 중인 민‧형사 소송에서도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에 관한 혐의를 낱낱이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2016년, 메디톡스-대웅제약 균주 도용 분쟁의 서막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균주 도용 분쟁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디톡스는 자사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기술을 대웅제약이 훔쳤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웅제약은 자체적으로 균주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디톡스 보톡스 ‘메디톡신’은 2006년 출시됐고, 대웅제약 나보타는 2014년 출시됐다.
메디톡스는 2016년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경찰에 대웅제약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듬해인 2017년 5월 대웅제약이 미 식품의약국(FDA)에 나보타 품목허가를 신청하자, 메디톡스는 한 달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대웅제약을 제소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국내 법원에도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지난해 1월 메디톡스와 엘러간이 ITC에 대웅제약을 영업상 비밀침해 혐의로 공식 제소하면서 두 회사의 공방은 더욱 치열해졌다.
ITC는 대웅제약을 상대로 메디톡스에 균주 출처를 제공하라고 명령했고, 대웅제약은 자체적으로 진행한 포자감성시험 결과 포자가 발생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포자는 균이 생존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성하는 일종의 보호막이다. 메디톡스는 자사의 `홀A하이퍼 균주`가 절대로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대웅제약의 균주는 포자를 형성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메디톡스는 "해당 검사는 대웅제약 방식의 검사법에 불과하다"며, ITC의 균주 판정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요청했다고 주장했으며, 대웅제약은 오히려 메디톡스가 에볼루스에 합의를 요청해 왔다고 공방을 벌였다.
지난해 5월에는 메디톡스 전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메디톡스가 메디톡신을 제조할 때 원액을 변경해 사용했다는 공익신고를 했고, 이는 결국 메디톡신의 국내 허가 취소로 이어졌다.
경찰이 공익신고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메디톡스가 메디톡신주 등을 생산하면서 허가 내용과 다른 원액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허가된 원액으로 생산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원액‧제품의 시험 결과가 기준을 벗어난 경우 적합한 것으로 허위기재했으며, 조작된 자료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해 국가출하승인을 받고 해당 의약품을 시중에 판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웅제약은 이 같은 메디톡스의 불법행위 등을 증거로 ITC에 추가자료를 제출했고, ITC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5일로 예정됐던 예비판결을 이날로 변경했다. 최종판결일도 기존 10월 6일에서 한 달 미룬 11월 6일로 변경됐다.
검찰은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와 공장장을 구속 기소했으며, 식약처는 지난달 18일 메디톡신주 등 3개 품목에 대한 허가를 취소했다.
◆대웅제약 “ITC 예비판결, 명백한 오판··· 이의 절차 착수”
이번 예비 판결로 인해 대웅제약의 주보는 전 세계 보톡스 시장 1위를 차지하는 미국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통상 ITC의 예비판결은 본판결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대웅제약은 ITC의 예비판결이 명백한 오판이라며, 이의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이번 예비결정은 미국의 자국산업보호를 목적으로 한 정책적 판단으로서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대웅제약은 ITC로부터 공식적인 결정문을 받는 대로 이를 검토한 후 이의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ITC는 16s rRNA 차이 등 논란이 있는 과학적 감정 결과에 대해 메디톡스 측 전문가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인용했거나, 메디톡스가 제출한 허위자료 및 허위 증언을 진실이라고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예비결정은 행정판사 스스로도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균주 절취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명백히 밝혔기 때문에 최종 판결에서 진위를 가려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ITC 행정법 판사의 예비결정은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지지 않는 권고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에 메디톡스의 제조기술 도용, 관할권 및 영업비밀 인정이 명백한 오판임이 밝히고, 이 부분을 적극 소명해 최종판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강조했다.
ITC위원회는 예비결정의 전체 또는 일부에 대해 파기(reverse), 수정(modify), 인용(affirm) 등의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향후 위원회는 이번 예비판결을 인용해 다시 대통령의 승인 또는 거부권 행사를 통해 최종 판결을 확정짓는다.
최종 결정에도 불복할 경우, 60일 이내에 CAFC(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CAFC가 항소를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만약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미 대통령이 ITC의 최종결정을 승인하면 법적 절차는 마무리된다. 대통령이 승인하지 않으면 다시 법원에서 다툼이 이어진다.
◆대웅제약, 미국사업 차질··· 메디톡스 또 다른 경쟁사 제소할지 주목
최종판결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대웅제약은 미국 현지사업에 차질을 빚게 된다. 주보 수입이 금지되면 전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석권의 꿈도 날아갈 전망이다.
지난해 5월 현지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주보는 지난해 3분기에만 15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현지 파트너사 에볼루스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400억원을 기록하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한 제약사 고위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대웅제약은 현지 소비자들에게 균주를 훔쳐간 업체로 각인됐을 것”이라며 “대웅제약은 이미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고 분석했다.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도 향후 대웅제약 실적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ITC에서 승소했을 경우 비용에 대한 부분을 상쇄할 수 있었겠지만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도 수입금지라는 타격을 입게 됐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소송 관련 비용이 계속 지출되면서 재무적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나보타 소송비용으로만 약 137억원이 쓰였다. 당초 ITC 판결이 2분기에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대웅제약 측은 “소송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제출 자료 기일과 코로나19 상황으로 판결이 7월로 미뤄지며 소송비용이 절감 영향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악재도 있다. 대웅제약이 최종판정에서 패소할 경우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로부터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
한편 업계에서는 메디톡스가 국내 ‘보툴리눔 균주’ 원조임을 내세워 또 다른 경쟁사들을 제소할지 주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메디톡스가 ITC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국내 보톡스 경쟁사에 대해서도 균주 도용 소송을 진행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간 경쟁사들은 보툴리눔 균주를 벌꿀, 화원 등 다양한 곳에서 발견해 왔다고 주장하며 메디톡스와 대립각을 세워왔으나,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을 비롯한 보톡스를 생산하는 모든 기업들은 자사의 균주를 도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메디톡스는 제소에 앞서 식약처 등 정부가 나서 의혹을 푸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국내 20여개 업체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발견했다며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 오고 있다”면서 “대웅 같은 대형업체가 5년간 거짓으로 버텨온 것이 판명됐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식약처 등이 직접나서 균주에 대한 출처 등 의혹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