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낯설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났다. 전쟁에 대해 많이 듣기는 했지만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대부분이다.
예술은 낯설어 무감각해지면 안되는 전쟁에 대해 계속 얘기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획전시인 ‘낯선 전쟁’을 기획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울관이 휴관 중인 상황에서 오는 25일 오후 4시에 유튜브 생중계로 온라인 개막한다.
전시는 ‘낯선 전쟁의 기억’ ‘전쟁과 함께 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등 4부로 구성됐다. 1950년대 6·25 전쟁 피난길에서 제작된 작품부터 시리아 난민을 다룬 동시대 작품까지, 시공을 넘어 전쟁을 소재로 한 드로잉·회화·영상·뉴미디어·퍼포먼스 등이 총망라됐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개인의 기억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전쟁과 재난 속에서 훼손된 인간의 존엄에 주목한 국내·외 작가 50여명의 작품 250여점을 선보인다.
먼저 김성환·김환기·윤중식·우신출·임호 등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종군화가단은 정식 군인은 아니지만 통행증과 신분증을 발급 받아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윤중식 작가가 평양에서 부산까지 피난길에서 겪은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그린 작품인 ‘피난길’은 한 편의 영화 같다. 어린 딸을 위해 젖동냥을 하고자 지나가는 아낙네들을 애타게 부르는 장면은 처절하다.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환은 날짜별로 일지를 쓰듯 그림을 그렸다. ‘1950년 10월 종로5가의 시체들’처럼 제목에 기록을 담았다. 몸에 맞지 않은 헐렁한 군복을 입은 인민군 소년병, 개성을 폭격한 미군기, 길거리에서 버려진 군인의 시체 등은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전달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6·25 전쟁도 전시됐다. 참전 군인이었던 호주의 이보르 헬레와 프랭크 노튼, 캐나다의 에드워드 주버가 전쟁 당시 상황을 그린 작품들이 디지털 이미지로 공개된다. 윤범모 관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작품을 국내로 운송하지 못해 아쉽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관련 작품들을 모았지만, 코로나19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일본 사키마미술관 케테 콜비츠 판화 연작과 폴란드 바르샤바국립미술관 ‘조선의 어머니’도 코로나19로 이번 전시에 함께하지 못했다. 미술관은 터키 작가 에르칸 오즈겐와 터키 참전 용사를 찾아가는 영상 촬영을 계획했지만 코로나19가 막아섰다.
이번 전시는 일상이 된 평화의 소중함도 전달한다. 가상화된 공간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탐구한 김세진 작가의 신작 ‘녹색 섬광’은 눈길을 잡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도로와 건물들, 움직이는 사람들이 전쟁이 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난민이 처한 상황을 다양한 매체로 알려온 아이 웨이웨이의 ‘난민과 새로운 오디세이’(2016)와 ‘폭탄’(2019)도 인상적이다. 50개의 무기를 실제 크기로 그린 ‘폭탄’은 전쟁의 잔혹함을 오롯이 느끼게 해준다.
‘무엇을 할 것인가’ 섹션에서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평화를 위한 실천을 모색하는 활동을 소개한다. 디자이너와 예술가들로 구성된 그룹 도큐먼츠(Documents Inc.)는 한국전쟁 당시 배포된 ‘삐라' 중 ‘안전 보장 증명서(Safe Conduct Pass)’를 2020년 버전으로 제작해 선보인다.
지난 23일 열린 간담회에서 윤 관장은 “전쟁이 뭔지 평화가 뭔지 새롭게 생각하는 시기다”며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낯선 전쟁’이 이 땅에서 전쟁을 종식하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