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휘둘리면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대한 책임론이 재차 고개를 들고 있다.
말 그대로 국가 안보의 ‘컨트롤타워’인 안보실의 안일한 상황 판단이 일련의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뚜렷한 결론보다는 ‘분석 중’, ‘논의했다’ 등의 원론적인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하자, 뒤늦게 ‘엄중 경고’ 등의 메시지가 나왔다. 그마저도 청와대가 언급한 ‘강력한 대응’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북한 전문가 부재…인사 교체 타이밍 失期
청와대 외교·안보에 대한 교체설은 개각 때마다 거론돼 왔다. 하지만 매번 남북 관계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임됐다. 정 실장을 비롯해 서훈 국가정보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외교·안보 참모진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자리를 지켜왔다.
정 실장은 통상담당 외교관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물이다. 군 출신인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은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에서 물러났다가 청와대로 다시 돌아온 케이스다. 김현종 2차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활동했던 통상 전문가다. 강 장관 역시 ‘비외교관 출신’의 외교부 수장이다.
청와대 내부에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참모진이 없다 보니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남북 간의 관계가 평화 무드일 때 드러나지 않았던 참모진의 위기관리 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들어선 것이다.
이날 사의를 표명한 김연철 통일부 장관 역시 30년째 북한학을 연구해온 통일 전문가로 기대를 모았으나, 현장과 괴리된 발언으로 몇 차례 구설에 올랐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학자 출신의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남북 개별관광 추진이었다. 김 장관은 “코로나19 상황을 봐가면서 시점과 방법론을 계속 고민해나갈 것”이라며 대북 낙관론을 주장했다.
◆강경 기조로 돌아선 文…靑, 北에 “예의 갖춰라”
북한과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 본인이 가장 공을 들여온 남북 관계가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 최대의 성과 중 하나가 오히려 집권 후반기에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일단 문 대통령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잇따른 ‘담화 도발’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 강경 대응으로 돌아선 상태다.
청와대를 비롯해 국방부와 통일부는 이날 오전 10분 간격으로 일제히 브리핑을 열고 북한의 최근 대남 비난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무례’, ‘폄훼’, ‘몰상식’, ‘비상식적 행위’ 등의 수위 높은 단어들을 써가며 북한에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에도 도움 안 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고 말을 했다.
북한에 대한 이 같은 비판 수위는 이번 정부 들어 전례 없이 강한 톤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을 포함해서 북한이 매우 무례한 어조라는 것”이라며 “그리고 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기념사에 대한 비난이 있어 그것이 종합적으로 포함된 결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강경 대응으로 대북 기조를 바꾼 데에는 국내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당장 미국 등 대내외적인 상황을 봤을 때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과거 사례를 비춰봤을 때 남북 관계가 최악에서 다시 회복되는 경우는 군사 도발에 준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가 회복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바닥까지 찍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협상 카드가 나왔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미국의 대선 국면, 코로나19 사태 등 현재로선 ‘백약이 무효’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