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에는 자동차산업협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완성차 기업, 기술보증기금, 지자체 등이 참여하는 총 4200억원 규모(출연금의 운용 배수 15배)의 '자동차 부품기업 상생특별보증' 협약식이 열리기도 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이날 직접 참석했다. 협약 체결 다음날인 12일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을 만나 상생특별보증 기금이 체결되기까지의 이야기와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한달 이상 구상"…위기 극복에 힘 보탠다
정 회장은 "이번 상생특별보증 협약은 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4월 개최한 '코로나 FAM(Finance Automobile Meeting)' 설명회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기보, 신용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등 국책금융기관 6곳을 초청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동차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번씩 만나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완성차 업체들에도 이번 협약은 긍정적"이라며 "업황이 어려운 만큼 완성차업체들이 부품사에 납품대금을 당장 주기 어려운데, 기보와 신보에서 보증서를 끊어주면, 보증서를 받은 부품업체들은 은행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고, 만기가 돌아오면 완성차 업체들이 이를 대신 갚아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달 이상을 구상했다"며 "부품사들이 위기를 넘겨야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반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협회가 자동차·부품업계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기적으로 32조8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했다. 정 회장은 "앞으로도 추가적으로 저신용등급 업체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을 더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외에도 정부의 기간산업 안정기금 등이 더해지면 어느 정도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주주인 마힌드라가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밝히며, 생사기로에 놓인 쌍용자동차에 대해서는 "한번 더 기회를 줘야한다"고 봤다. 정 회장은 "쌍용차는 코로나19 사태가 없었으면 회생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코로나19로 치명상을 입었다"며 "그간 임금을 동결하고, 자산을 매각하는 등 자구노력을 쭉 해왔는데 새로운 투자자를 발굴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달 자동차 수출은 약 17년 만에 10만대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5월 대비 57.6%나 급감한 9만5400대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위기지만 '최저점'은 지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 등이 경제 재개 조치를 하고 있고, 코로나19 이전 수준은 아니어도 해외 수요가 살아나는 조짐이 보인다"며 "특히 내수의 경우 3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는 등 잘 받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 수요 회복까지는 상당기간이 걸리는 만큼, 개별소비세 인하 등 내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정부가 2월 말부터 개소세를 70% 인하했는데, 이를 연말까지로 연장하기 위해서 협회도 건의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기재부가 개소세 연장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70% 인하가 12월까지 연장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또 정 회장은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대비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중국 업체들의 회복이 빠르다"며 "코로나19 이후 중국업체들의 부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격 면에서 중국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단순히 저가 차량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며 "기술력이 뛰어나면서 대량 판매가 가능한 좋은 차량을 만들어야 하고, 자율주행차·전기차·수소차 등 미래 먹거리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규모에 한계가 있는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해외 시장은 얼마든지 더 키울 수 있지만, 국내 시장은 인구가 두배로 늘지 않는 한 고정돼 있다"며 "해외 생산 기지가 많아지고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면 부품, 소재 기업들이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과 회사와의 상생·협력 문화도 강조했다. 정 회장은 "축구로 생각하면 노동자와 주주, 경영자는 모두 한팀"이라며 "노동자가 제품을 생산하며 수비와 골키퍼를 담당한다면, 경영진은 공격수고, 주주는 전체 팀을 아우르는 감독이기 때문에 한팀이란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현대차 등 노조들이 임금 투쟁보다는 고용안정으로 방향을 잡았고, 위기를 함께 인식하는 공동체 의식이 커지고 있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매년 시행하는 임금 단체협상의 경우 3~4년 단위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자동차가 한번 출시되면 7년 정도 만들다가 새 모델로 바꾼다"며 "자동차 신모델 주기에 맞춰 중간에 한번 정도 재협상을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매년 투쟁하고 협상하는 손실 비용을 없애고, 생산에만 전념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조와 사측 상호 간 공동체 인식"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