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15) 차를 마실 줄 알아야 하노이 시민

2020-06-15 15:50
  • 글자크기 설정

[안경환]



베트남 민족의 발전 역사는 차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 잎차와 중국차를 마시는 풍습은 기원 전 3천 년 전 흥브엉 시대부터 현재까지 베트남 음식 문화의 기본이 되어왔다. 차는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수의 일종이자 도시나 농촌 마을에서 회의를 하거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손님을 접대, 환송, 환담할 때 같이 권하고 마시는 사회 교제의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가정에서 차는 아침을 여는 마중물이자 저녁식사 후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하루를 마감하게 하는 마감재이다. 또한, 차는 명절 선물, 절이나 사당에서 복을 구할 때, 청혼할 때, 부탁할 때, 어떤 상황을 확인해 볼 때, 조상 제사에 사용하는 교제의 수단이자 제례, 신앙 행위의 수단으로 애용되었다. 차의 역할을 열거해 보면, 차는 산을 푸르게 하여 환경 보호원, 수출 상품으로 유력한 외화수입원, 인간의 뇌 활동을 돕고, 몸에 유용한 카페인 공급원, 약리적 성분을 함유한 건강 약초, 시, 서예, 단가와 함께 예술성을 풍부하게 하는 예술인들의 벗, 베트남 독립과 구국 항쟁의 의기를 높이는 회합에 윤활유 역할 등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차는 이상적인 건강 음료로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이다. 현대는 세계 인구의 50%이상이 매일 마신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신농은 백초를 맛보고 72종류의 독초를 발견했는데, 차를 마시니 즉시 해독 된다.”, “차 맛은 쓰나,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적게 눕게 되고, 몸이 가벼워지고 눈이 맑아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차는 처음부터 고관들의 약재로 사용된 것이다. B.C 1606년 진나라 주무왕은 파촉에 군대를 보내 정벌하고, 차와 꿀을 조정에 공납하도록 하였다. 당나라시대인 760년에 육우(陸羽)는 세계에서 최초로 차에 관한 연구서인 다경(茶經)을 편찬하였다. 차는 점차 보편적인 해갈 음료가 되었고 중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7대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7가지 중요 요소란 장작, 쌀, 기름, 소금, 장, 식초, 차를 말한다. 차는 중국으로부터 661년에 한반도로, 729년에 고승(高僧)들에 의해 일본으로 전파되어 차도로 발전되었다. 실크 로드를 따라 아랍과 중동지방으로, 그리고 상선을 타고 온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로 전파되었다. 또한 몽골로 전파되어 내몽고 사막을 통해 낙타 대상들에 의해 러시아로 전파되었고, 유목민들의 말과 교환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지배를 받은 베트남 사회에는 깊은 차 문화가 녹아있다. 베트남에서 차는 단순한 음료 이상의 사회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차를 권하는 것은 의리 있는 사람의 도리
베트남은 54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며, 54개 민족은 서로 다른 7개 문화권에 거주하고 있다. 서북 지방, 북부 지방, 토속 북부 지방, 중부 해안지역, 중부 해안지역, 서부고원 지역, 남부 델타 지방이 각기 다른 문화권이다. 7개 문화권이 각기 다른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54개 민족이 전국적으로 차를 음용하는 것은 오랜 식생활 전통 문화의 결과이다. 1773년 레 왕조의 레뀌돈(Lê Quý Đôn)은 “번다이로아이응우(雲臺類語)”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차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레뀌돈은 760년에 중국 당나라 시대의 명의(名醫)인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을 참고하여, 타인호아(Thanh Hóa) 지방의 차음용에 대한 민속을 소개하였다. 여기서 차를 권하는 사람을 의리가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맛있는 차, 떫은 물 권하노니,
조국산천이여, 차 권하는 사람의 의리는 잊지 마세.

또한, 베트남 민요에 탕롱(하노이의 옛 이름) 사나이의 3가지 자격에 관한 구절이 있다. 또똠 (베트남식 화투) 놀이와 차를 마시는 일, 응우옌주 대시호가 지은 베트남 문학걸작 ‘쭈옌끼에우’를 몇 구절 암송할 중 알아야 하노이 사나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호방하면서도, 여유를 즐기고, 인본을 아는 사람을 하노이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사내는 또똠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만하오차를 마시고, 쭈옌끼에우를 읊조릴 줄 알아야 할지니.

베트남 시에 베트남 사람들의 차를 권하는 정감을 노래하고 있다.

집은 초가삼간이나
마음은 넓어
솥에 밥은 설익어도
녹차 한 잔 나누며
앉아 서로의 심정을 즐거이 나누네.

베트남에서는 차를 권할 줄 알아야 의리가 있는 사람이고, 차를 마실 줄 알아야 하노이 사나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차를 같이 안 마시겠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사회적인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차를 같이 마시는 것은 인간관계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사회적인 활동의 하나이다.

◼ 차나무 원산지
전 세계 차 종자가 80개가 있는데 그 중에 60여개가 중국 종자라고 알려져 있다. 1753년에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aeus)가 세계 최초로 차나무의 학명을 부여하고, 홍차와 녹차 2종류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중국을 세계 차 원산지로 공인하였다. 차의 원산지에 대한 주장은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차나무 원산지는 중국 윈난성(雲南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쓰촨(四川)성을 통하여 동쪽으로 전파되어 기후의 영향으로 소엽종(小葉種) 차나무로 변화되었다. 또한 남부와 서남쪽으로 전파되어 인도, 미얀마, 베트남의 대엽종(大葉種) 차나무로 변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차나무가 널리 분포되어 있는 지역은 중국 윈난성 남부, 베트남, 라오스 북부, 미얀마 북부, 인도 북부지역을 비롯한 동남아 계절풍 지역이다.
 

 


◼ 베트남 차의 역사
기원전부터 약 11세기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온 베트남은 중국 차 문화의 영향을 받아 왔고, 베트남 민족 또한 오래전부터 차를 음용해 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세기에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하고 나서부터 차를 상품화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아시아의 차는 매우 귀한 상품이었다. 기후조건이 차 재배에 적합하고 노동력이 풍부했음에도, 베트남의 차 생산량은 저조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텃밭에 다른 농작물, 과일나무와 섞어서 차를 재배하였고, 차나무에서 채취한 차의 품질이 낮고, 전통적인 차 제조법으로 만든 차만 마셨기 때문이다. 즉, 생잎차를 따서 즉석에서 차를 우려내어 마셨다. 게다가 차는 자급자족하는 수준으로 가공기술도 낮아서 차밭 또는 차 재배단지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였다. 상류층 사람들은 중국의 우롱차 만하오(Mạn Hảo)차를 마셨다. 중국 사람들은 차를 독점하여 이득을 챙겼고, 생산기술을 비밀로 하여 베트남 사람들에게 전수하여 주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 또한 영국과 네덜란드 사람들이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서 하는 것처럼 대규모로 시설을 할 만큼 자본이 충분하지 않았다. 더구나 프랑스 사람들은 차보다 커피를 즐겨마셨다. 때문에 프랑스자본가들은 차 재배 보다 베트남에서의 커피 재배에 더 많이 투자하였던 것이다.

◼ 베트남의 차 산업
베트남에서 차를 음용해 온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잎을 따서 끓는 물에 넣어 마시는 간단한 방법, 그늘에 말리거나, 비비거나 찧고, 가볍게 발효시키거나, 햇볕에 말렸다. 잎을 따서 잘게 썰어서 약하게 발효시키거나, 햇볕에 건조시키거나 부엌 천장에 걸어서 연기로 건조시키는 방법으로 차를 만들었다. 또는 눌러서 빵처럼 만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차를 만들어 자급자족하였고, 시골 장에서 생잎차로 판매하고 도시로 팔 때는 덕어서 팔고, 산악지방에서 평야지대로 팔 때는 고리처럼 만들거나 떡차, 빵 또는 둥근 수레바퀴 모양의 차로 만들어 팔았다. 도시 상류층 사람들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윈난성(雲南省)이나 푸젠성(福建省)의 우롱차를 주로 마셨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한 이후부터 프랑스 사람들이 주도하여 국내외에서 차 시장을 연구하고, 영국 사람들이 스리랑카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운영하는 차 재배와 가공 산업을 연구하고 중국의 녹차 제조법을 배웠다. 그 결과, 홍차와 녹차를 생산하여, 영국과 네덜란드의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차보다 우수한 품질의 차를 생산하였고, 중국의 녹차와 대등한 품질의 차를 생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에는 30여년에 걸친 전쟁으로 설비투자를 할 여력이 없었고, 판로도 개척하지 못했고, 프랑스 자본가가 사용하던 제조 설비가 그대로 사용되어, 베트남의 차 산업은 낙후성을 면치 못하였다. 침체되었던 차 산업은 1986년 ‘도이머이’ 정책 도입이후, 보급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되었고, 경제 단위별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비를 절감하고 기술향상에 힘을 모으면서부터 회복기에 들기 시작하였다. 1987년 9월 VINATEA가 설립되어 차 수출입과 투자를 전담하게 하면서 생산, 제조, 소비를 총괄하게 되어, 차 산업의 모든 활동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본격적인 차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베트남은 세계 6위 규모의 차 생산국으로, 2019년도에 13만 톤 이상을 수출하여 2억3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수출 효자 상품이다. 차는 쌀과 커피에 이어 중요한 경제 작물이다. 향후, 차 산업은 설비와 가공 기술을 선진화하고 품질을 향상시키면서 베트남의 주요 수출 산업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차 종류가 다양하고, 차음용 역사가 기원전 3천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에서 차 문화를 이해하고, 차를 통해 깊은 속마음을 소통하는 것은 베트남 사람들과 원만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