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인재를 모조리 영입한다는 중국의 '천인계획'이 이제는 '만인계획'으로 확대돼 우리나라까지 휩쓰는 등 인재 유출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기술 패권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국내 주력 산업의 근간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최근 '39년 삼성맨'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66)이 중국 디스플레이 구동칩세트 제조업체인 에스윈의 부회장(부총경리)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윈은 2016년에 설립된 신생 회사다. 중국 디스플레이업체 BOE의 창립자 왕둥성이 회장(총경리)을 맡고 있다는 데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왕 회장은 BOE를 세계 1위 디스플레이업체로 키운 '중국 LCD의 아버지'로 불린다.
장 전 사장의 중국행은 삼성 사장급 출신 인사 중 중국 경쟁사로 이직한 첫 사례여서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국내 핵심 인재 유출의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인재 영입을 통해 중국이 기술을 빼돌리는 데 있다. 국내법을 교묘히 우회하는 방식으로 얻은 기술력으로 중국은 인재에 쏟아부은 투자금의 수십~수백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지난 4월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디스플레이산업의 노동시장 현황과 재도약을 위한 인력정책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인재 유출 등의 방식으로 2012~2017년 사이 국가 핵심기술 중 21건이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디스플레이 기술은 6건(5건 중국)에 달한다. 2018년 11월에도 디스플레이 장비업체가 핵심기술 유출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며, 소재 업체의 전·현직 직원도 지난 2월 핵심기술 유출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인재 유출을 법 제도로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강력한 처벌 규정을 신설할 수는 있으나 현·퇴직 기술 인재가 국가의 주력 산업 기술을 빼돌리지 않도록 유인할 수 있는 '당근책' 마련이 산업을 키우고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해답이라는 조언도 들린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신산업실·부연구위원은 "디스플레이 등 주력산업의 기술 인재를 해외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공공 R&D 센터 등 급수 높은 일자리를 마련해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기술 인재 유출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의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은 기술 패권 국가가 되는 핵심적인 기술로, 단순히 기술을 빼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데려가는 것인데, 해당 인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다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이공계에 대한 투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전폭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기술인이 자부심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기술 패권 시대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