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계뿐만 아니라 가요계까지 뿌리내리려는 '부캐 열풍'이 심상치 않다. 부캐는 부(副)캐릭터의 줄임말로 이젠 하나의 현상이다. 본캐(한 인물의 원래 캐릭터)를 넘어서는 인기를 얻고 있다.
부캐는 대중문화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캐릭터다. 부캐는 '다음' 혹은 '둘째'를 의미하는 '부(副)'와 캐릭터를 합쳐서 줄인 말이다. 게임에서는 자기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 계정으로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한 인간이 원래 가진 캐릭터가 '본(本)캐'라면, 본캐 이외의 다른 캐릭터가 부캐다. '짜고 치는 다중 인격'인 셈이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미스터트롯’에도 복면을 쓴 트로트 가수 삼식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출연진들은 “가수 JK김동욱”이라며 그의 정체를 밝히려 노력했으나, 결국 삼식이는 복면을 벗지 않은 채 무대를 떠났다.
이 외에도 방송인 박나래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안동 조씨, 조지나 캐릭터를 만들었다. 부캐릭터 열풍에 맞물린 일회성 캐릭터로 끝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박나래는 조지나 자격으로 케이블채널 올리브TV ‘밥 블레스 유 시즌2’에 출연하는 등 부캐릭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이야말로 부캐의 진수를 보여준 캐릭터다. 그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 데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유산슬’이라는 예명으로 신인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유재석은 ‘신인 답게’ KBS 1TV ‘아침마당’의 신인 트로트 가수 무대에도 등장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가 하면 버스킹도 시도했다.
또 유산슬로 세상을 들썩거리게 했던 MBC '놀면 뭐하니'가 이효리의 부캐 '서울왔어효'도 탄생시켰다.
유재석 이후로 다른 개그맨들도 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중 가장 돋보인 인물은 개그우먼 김신영이 변신한 ‘둘째 이모 김다비’다. 김다비는 새빨간 색이 돋보이는 화려한 무늬의 골프웨어를 입고 올림머리를 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리고 방송에 등장해 이 세상 모든 조카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며 “주라 주라 . 휴가 좀 주라. 칼퇴 칼퇴 집에 좀 가자” 등의 가사를 열창한다. 흥이 나는 멜로디와 조카들이 하지 못했던 말들로 촌철살인을 하는 시원한 가사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발매한 김다비의 ‘주라주라’는 발매일에 1위를 차지했으며 아직까지(31일) 국내 음원차트 순위권에 진입해있다.
배우들도 출연하는 드라마 속 캐릭터로 SNS를 개설해 운영하는 등 대중과 새롭게 소통하고 있다. SBS ‘하이에나’의 김혜수, tvN ‘호텔 델루나’의 아이유, MBC ‘그 남자의 기억법’의 문가영이 각각 극 중 캐릭터 이름으로 SNS를 만들고 직접 운영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부캐의 인기 비결에 대해 “대중들이 다양한 자아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꼽는다. 트위터·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고 부계정을 여러 개 만드는 요즘 '멀티 페르소나', '부캐'는 사실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다음 카페'가 태동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한 '아이디'나 싸이월드 전성기 시절 '아바타'도 따지고 부캐 개념이다. 지금 세대에게는 온라인 게임 용어로 이미 자리잡은 개념이다.
부캐는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캐의 스펙트럼을 자연스럽게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동안 연예계 안팎에 부캐 열풍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중들은 판타지에 가까운 ‘부캐’ 설정에 기꺼이 공감하며 속아(?)넘어가 줄 것이다. 이런 대중들의 심리는 누구나 내가 발딛고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닌 또 다른 곳을 꿈꾸는 속마음의 반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