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서울 서초동 회의실에서 기자 설명회를 열고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의무를 사업자에게만 내맡기고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입법 행태를 지적했다.
지난 4일 이원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불법 촬영물 유통을 막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현행법상 불법 촬영물 신고 시 삭제할 대상은 일반에 공개된 경우에 한정된다. 반면 개정안은 명확한 기준도 없이 부가통신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기술적·관리적으로 조치하라는 내용이어서 인터넷상 표현의 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오픈넷은 본다. 현재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활용하는 금칙어 걸러내기를 뛰어넘어, 예측 불가능한 기술 발전과 통신의 자유 간 관계에 대해 사회적 합의도 없었다는 문제 제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7일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절차만 남겨놨다.
박 교수는 “아무런 설명 없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업자가 대통령령에 따라 기술적 관리를 하라는데, 위헌임은 말 할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도 얼마든지 부가통신사업자가 될 수 있는데,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 곳곳의 표현 공간이 문 닫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n번방 방지법이라면서 일반에 공개된 정보만 다룬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여당의 해명은 스스로 n번방 방지법이 아니라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가연 변호사는 “국가는 계속 사업자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한다”며 “기존 피해자 지원 제도 강화나 예산 증가도 다루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경신 교수도 “법은 행정기관이 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고발이 들어오면 검찰이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위험이 있으면 법을 잘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가 아무렇게, 무책임하게 법을 만들고 있다”며 “대이용자 감시를 의무화 하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사적인 대화에서 불법 요소를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단지 연인 간에 특정 단어를 사용할 때도 문제가 될 수 있고, 합의 하에 서로의 영상을 보낼 수도 있다. 특정 신체 부위 촬영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지도 1~2심과 대법원 판단이 다른데, 이 모든 문제를 사기업의 사용자 감시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오픈넷은 또한 개정안 처벌 대상을 기술적으로 똑같이 접근 가능한 모든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적용하지 않고 왜 ‘부가통신사업자'에만 적용하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오픈넷은 반대하는 방식이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인터넷 망을 가진 이동통신 3사에 법을 적용하는 편이 근본적인 해결책 아니었겠느냐는 비판적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