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 (21)] ‘아테네의 하얀 장미’ 나나 무스쿠리 ①

2020-05-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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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북클럽 지중해 오디세이'(21)] 음반 판매량 3억 장의 주인공

[지중해 오디세이 21] ‘아테네의 하얀 장미’ 나나 무스쿠리
①음반 판매량 3억 장의 주인공
 

나나 무스쿠리

그리스가 2차 세계대전 후 지중해 관광의 중심이 된 데는 1960년에 개봉된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가 대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아테네의 항구 피레우스 부근이 ‘영업장’인 창녀 일리아의 매력에 빠진 미국인 작가 호머가 일리아를 문화와 교양을 지닌 숙녀로 변신시키려다가 실패하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196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작으로 오르고 주제가인 ‘피레우스의 아이들’은 주제가상을 받았습니다. 일리아를 연기한 그리스의 금발 미녀배우 멜리나 메르쿨리(1920~1994)는 세계적 배우가 됐고, 그가 부른 ‘피레우스의 아이들’은 1960년대 한국 시골 어린이들도 흥얼거릴 정도로 대히트를 했습니다. 영화가 이처럼 성공하면서 영화에 비쳐진 그리스의 고대 문화유산과 민속을 구경하고, 에게 해의 풍광을 즐기려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게 된 그리스 여성과 노래는 멜리나 메르쿨리와 ‘피레우스의 아이들’ 말고 또 있습니다. 나나 무스쿠리(1934~ )와 그의 출세곡인 ‘아테네의 하얀 장미’입니다. 아테네의 하얀 장미는 영어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Till the white rose blooms again/ You must leave me, leave me lonely/ So goodbye my love till then/ Till the white rose blooms again.” “하얀 장미가 다시 피기까지 당신은 나를 떠나겠지요. 그때까지 안녕, 내 사랑 안녕, 하얀 장미가 다시 필 때까지 안녕.” 가사도 쉽고, 곡도 쉬워 따라 부르기 좋습니다. 콧노래로 흥얼대기도 좋고. 에게 해의 물결처럼 잔잔합니다.

나나는 이 노래를 1962년 독일어로 불렀는데, 일 년 만에 독일에서만 100만장이 팔렸습니다. 영국 BBC 관계자가 이걸 듣고 나나를 영국으로 초청해 프로그램을 맡겼고, 후일 마이클 잭슨을 키워낸 명 프로듀서 퀸시 존스는 나나를 당시 미국 최고 인기 가수였던 해리 벨라폰테에게 소개, 둘이 함께 미국 투어를 하도록 기획했습니다. 이후 이 노래와 나나의 인기는 계속 치솟습니다. 독일어 영어 외에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네델란드어 프랑스어 가사로도 불렸고, 그의 콘서트에서는 빠질 수 없는 곡이 됐습니다. 1957년 그리스 노래로 첫 음반을 낸 나나의 음반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무려 3억장이나 팔리고, 그가 사상 최고의 팝가수(대중가수)로 꼽히게 된 것은 바로 이 노래, ‘아테네의 하얀 장미’ 덕이 분명합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버앤오버’, ‘사랑의 기쁨’ ‘하얀 손수건’ 등등 나나의 명곡들은 ‘아테네의 하얀 장미’가 없었더라면 들을 수 없었을 겁니다.

1961년 독일(당시는 서독)의 한 영화감독이 ‘일요일은 참으세요’를 보고 그리스 관광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아테네로 옵니다. 그는 그리스의 유명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에게 다큐멘터리에 쓸 음악을 부탁합니다. 마노스는 친구인 시인 니코스 가스토스에게 가사를 받아 다섯 곡을 작곡해 자기가 발탁한 나나에게 부르게 합니다. 그중 한 곡이 ‘아테네의 하얀 장미’입니다.이 다큐멘터리는 독일에서 대성공을 거둡니다. 베를린 영화제의 최대 영예인 은곰상을 받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다큐멘터리에서 흐르는 나나의 순수하고 깨끗한 목소리에 반합니다. 한 레코드 회사가 나나의 노래를 음반으로 내려고 나나를 독일로 초청합니다. 2차 대전 때 그리스를 침공한 나치 독일군의 악행과 만행을 눈으로 직접 본 나나는 초청을 거절하다가 작사가인 니코스가 “독일을 용서하는 것도 독일을 이기는 것”이라고 설득하자 독일로 떠납니다.

‘아테네의 하얀 장미’를 처음 부른 지 46년이 지난 2008년 나나는 은퇴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7년 뒤인 2015년에 나온 그의 자서전 제목은 <박쥐의 딸>입니다. 나라면 여러 의미가 있는 ‘아테네의 하얀 장미’를 제목으로 했을 텐데 나나는 이 제목을 택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영화관 영사기 기사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벌이도 시원찮은데 노름을 좋아했습니다. 영화관 일이 끝나도 집에 안 가고 밤새 노름판을 지켰습니다. 영화관 청소부였던 아내가 애써 모은 돈도 뒤져내 노름판에 바치고 둘째인 나나가 태어나던 밤에도 아내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이런 그를 박쥐라고 불렀습니다. 자서전에서 나나는 이런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가운데서도 음악공부를 시키려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보내는 감사가 절절합니다. (‘②에게 해처럼 잔잔한 목소리에 매료된 지구인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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