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코로나19가 가지고 올 식량 안보 구멍, 막아야 한다

2020-05-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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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


코로나19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우리나라 하늘도 참 맑고 파랗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한국 의료진이 대단하다는 점도 새삼스레 깨달았다. 평소에는 자동차 사이로 위험하게 다니시는 택배기사님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랐지만, 그분들 덕택에 집콕을 버틸 수 있었다. 코로나19 진단키트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한 빠른 규제 개선으로 인해 이번 5월 연휴는 제법 연휴 분위기가 나고 있다. 집에만 있다 보니 뭘 해먹으면 좋을지 고민이 되면서 곡물 가격이 상승한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 안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이 막히고 유통망이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쌀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인도(1위), 베트남(3위)이 3월에 쌀 수출을 잠시 중단했다. 수출 2위인 태국은 쌀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았지만, 자국 내 계란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오르자 수출을 금지했다. 곡물뿐만이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육류 가공 공장에서도 직원들이 코로나19에 걸려 가동이 중단되면서 돼지고기, 소고기 등의 육류 공급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촉발했지만 식량 공급 불안의 밑바닥에는 이상기후 현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업화로 인한 온실효과 이야기는 진부한가. 그러면 인도양 엘니뇨라고 불리는 ‘쌍극화(dipole)’ 현상은 참신할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인도에서 역대급의 기상이변이 예상된다. 이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인도양 서부의 중동 및 아프리카 동부에는 폭우가 내려 농경지가 수몰되었다. 운송 수단이 파괴되면서 곡물 생산 및 공급이 중단되어 동아프리카의 곡물 가격이 폭등했다. 인도양 동쪽 호주에는 가뭄과 폭염이 닥쳤다. 작년 가을부터 올해 연초까지 호주에서 폭염과 함께 엄청난 산불이 났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프리카 사막에서는 몇천억 마리의 메뚜기떼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곡물을 다 먹어치웠다. 바람을 타고 아프리카에서 비행을 시작해 중동과 파키스탄을 거쳐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식량 위기는 바이러스 위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곡물시장은 다른 상품시장과 비슷하게 투기자본으로 인한 가격 변동성이 큰 시장이다. 가격이 상승할 것 같으면 투기자본이 몰리면서 상승폭을 더 키우는 쏠림 현상이 빈번히 나타난다. 다른 상품시장과 차별되는 점은 곡물 시장은 매우 얇고(thin market), 몇몇 주요 곡물 메이저들이(ADM, 카길 등)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먹거리에 대한 수요는 거의 일정한 특성 때문에 곡물 생산량이 조금만 변동해도 가격이 크게 상승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쉽게 퇴치될 것 같지 않다. 온난화 등 기후변화는 식량 위기를 현실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코로나19도 그랬지만 위기는 순식간에 현실화된다. 현실화되고 나서 대처하면 패닉에 빠진다. 보건·의료 분야도 그렇지만 위기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먹거리 문제야말로 민간이 아닌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윤이 발생하기 힘들고 중장기적인 대처가 지속되어야만 작은 효과라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효과마저도 없다면 우리 국민이 빠지게 될 위험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처해야 한다. 개인의 안정적인 영양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강한 면역력을 지키는 데 있어서 필수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식량 생산과 도입, 보관, 공급 등 전 분야에 걸쳐 원활한 대응이 잘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국내 곡물 생산 기반의 확대 및 정비가 필요하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문화·복지 시설을 확충한다면 더 많은 청장년층들을 농촌으로 향하게 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농업 생산 확대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농업생산기반시설 측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농업용수 사용 낭비를 줄이기 위한 세밀한 디자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용수 사용량을 줄이라고만 하기보다 사용량 감축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은 어떤가.

나아가서 국가적인 곡물 조달 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식량 위기 발생 시 현재의 조달 시스템으로는 대응하기 힘들고 정부 정책 지원을 기반으로 민간자본도 참여하는 조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 주요 곡물 수출국에 곡물수출터미널을 완공하고 가동 중인 곳이 있는데 이와 같은 민간이 구축한 곡물터미널을 비상시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정부 지분 투자 등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정부의 투자 대상으로서도, 그리고 좁은 국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해외 농지 개발이 미래 지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농어촌공사법이 일부 개정되어 농어촌공사가 참여할 수 있는 해외사업 종류 및 범위가 확대된 것은 희소식이다. 기존의 해외농업개발 및 기술용역사업을 넘어서 농산업단지와 지역개발, 농어촌용수 및 지하수자원 개발 등 보다 광범위한 분야의 해외사업 참여가 가능해졌다.

평소에는 미미했던 국가의 존재 이유를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때문에 설마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결국 보건·의료 부문의 위기가 발생했었다. 국제 곡물 가격의 상승과 낮은 국내 곡물 자급도, 기상이변과 함께 코로나19의 장기화. 뭔가 대처가 없으면 설마하는 식료품 사재기가 발생할 수 있다. 식량 안보에 큰 구멍이 생기기 이전에 준비해야겠다.



(위 내용은 현대경제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닌 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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