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구름빵' 백희나 작가가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이유

2020-05-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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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어느날 아침,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작은 구름을 본 고양이 남매는 구름을 엄마에게 가져갔다. 엄마는 그 구름을 반죽해서 빵을 굽는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을 먹은 엄마와 아이들은 구름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이 이야기는 바로 동화 '구름빵'의 줄거리다.

2004년 출간된 '구름빵'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아왔다. 책을 쓴 백희나 작가는 최근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백 작가는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왔다고 한다. 

어떤 이유일까? 인터뷰를 통해 백희나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책 읽는 곰 제공/ '구름빵' 백희나 작가]


Q. 처음 '구름빵'을 구상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구름빵'의 경우 출판사에서 판타지 장르를 요구했습니다. 마침 장마철이었고 비를 무척 그리워하던 시절이라 뭔가 비에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비 오는 창 밖 풍경을 보니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저렇게 비를 머금은 구름이 땅 위로 가라앉으면 누군가가 주울 수도 있겠다, 주운 구름으로 무언가를 해보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졌어요. 이때 요리를 좋아하는 작은 언니가 뭔가 요리와 관련되는 이야기를 만들라고 제안했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Q. 상상력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작업의 영감을 기다렸다가는 죽을 때까지 작업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성실하게 임해서 해내는 것이 창작의 기본인 듯합니다. 그리고 작업이 고된 편인지라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비타민도 챙겨 먹고요.


Q. '구름빵'이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지만 작가님께서는 내내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A. '구름빵'은 신인 때 처음으로 만든 창작 그림책입니다. '북스북스'라는 회원용 잡지에 딸린 그림책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같은 작업을 맡은 작가들이 많이 있었고요. 모두 같은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작물 용역 계약서, 즉 저작권을 모두 출판사에 양도하는 불공정한 내용이었는데 형평성을 이유로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회원용 책이었으므로 서점에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는다고도 했고요. 이미 작업이 1/3 이상 진행된 시점에서 계약을 안 하고 다른 출판사를 찾는다는 것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일을 시작하는 신인으로서 출판사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거든요. 당연히 그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믿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단행본으로 나오게 된다면 당연히 그에 맞는 계약을 다시 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6년 간 저는 '구름빵'이 애니메이션, 뮤지컬, 수많은 그림책과 상품으로 변형되어 나오는 것을 완전히 제3자 입장에서 지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데뷔작이 그렇게 되다 보니 충격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경제적·심리적 문제로 인해 7년이나 창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Q.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말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A. 그렇죠. 그러다 어렵게 독립 출판이라는 형식으로 다시 창작을 시작했고 조용히,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책 읽는 곰’이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 다시 생겼고요. 하지만 2014년 '구름빵'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자에게 저작권이 없다는 것이 보도되면서 한솔수북은 여론의 몰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에게 저작권을 돌려주기로 협의 중이라는 기사를 냈더군요. 저는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뒤늦게 제가 ‘정말 돌려 줄 것이냐’고 묻자 "오해 하지 말아라. 아직 결정한 게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렵사리 협상 자리를 마련했지만 '구름빵'의 2차 저작권은 이미 여러 회사가 나누어 가진 상황이었고요.

그들은 제가 '구름빵'의 저자가 맞냐며 확인을 해줘야 협상에 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구름빵' 촬영을 맡았던 직원이 "자신도 공저자이며 저작권을 함께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자를 가리기 위한 소송을 했는데, 모든 제작 과정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었던 덕에 제가 유일한 창작자이며 저작자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어렵게 소송까지 해가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협의는 지지부진한 채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작권 반환을 위한 소송을 시작했으며 지금 제가 2심까지 패한 상황입니다.

 

[사진=한솔수북 제공/ '구름빵']


Q. 저작권과 관련해서 가장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기본이 지켜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와 작가는 공생의 관계입니다. 서로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로 짓밟고 이용하는 관계가 결코 아닙니다.

일련의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가 바라는 것은 '구름빵'으로 발생한 수익이 아니라 저작자로서의 권리입니다. 제 작품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보고 받을 권리, 제 작품이 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권리 말입니다. 소송을 통해 무참히 부서지더라도, 우리 작가들의 권리에 대해 부르짖고 싶었습니다. 당장 제가 얻을 것은 없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신인 작가들이 앞으로 수없이 겪을 부당한 계약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싶습니다.

Q. 어떠한 어린시절을 보냈나요?
A. 저는 조용한 아이였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혼자 공상을 하거나 저만의 생각에 빠져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나 행동 방식이 다를 때가 더러 있어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경험과 사고방식이 작가로 살아가는 데는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사진=책 읽는 곰 제공/ 백희나 작가 '알사탕' 장면 일부]


Q.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이 무엇인가요?
A. 딱히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작업을 할 때 독자를 정말 많이 의식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독자가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지, 어떻게 해야 감정이 더 잘 전달될지,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을지, 모든 고민의 중심에는 독자들이 있죠.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거든요. 

Q. '구름빵' 속 구름빵이나 '알사탕' 속 알사탕이 현실에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A. 일단 저에게 '구름빵'은 지금까지도 결코 펼쳐 볼 수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네요. 다만 '알사탕'에 나오는 마법의 알사탕이 현실 속에 있다면 얼마 전 하늘나라에 간 나의 개 영이의 마음 소리를 가장 듣고 싶어요. 미안하다고,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사진=책 읽는 곰 제공]


Q. 존경하는 작가나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으신가요?
A. 그림책은 아니지만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꼬마마녀'를 좋아해요. 그 밖에도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아빠, 잘 있어요?', 안녕달의 '메리'와 '수박 수영장', 리즈베스 츠베르거와 비어트릭스 포터의 모든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Q. 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창작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A.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창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린 시절 추억의 일부로 제 그림책이 존재해 준다면 더 없이 기쁘고 영광스러울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열심히 합시다. 그리고 계약서 잘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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