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칼럼] 포스트 코로나, 천천히 서둘러야 할 때

2020-04-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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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교수]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그는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유언장에서 후계자로 지명될 당시만 해도 젊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실력자 안토니우스 등과의 치열한 내전을 종식시키고 황제로 등극했다. 그의 좌우명이 ‘천천히 서둘러라(Hurry up slowly; 라틴어로는 festina lente)’였다. ‘천천히’와 ‘서둘러라’라는 서로 모순되는 반대어를 결합시킨 말로, 전후좌우를 잘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뜻이다. 전후좌우를 잘 살핀답시고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되고, 너무 급하게 서둘다가 서두르는 이유와 목적·방향감각을 잃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구분하면서 한 발씩 치밀하게, 그러면서도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3.0%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국제무역량이 작년 대비 최소 13%에서 최대 32%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북미와 아시아의 수출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면서 “전자와 자동차 등과 같이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가진 제품들의 무역이 더 가파르게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IMF는 우리 경제 또한 올해 성장률이 -1.2%로 급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나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라지만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앞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게 IMF의 분석이다. 여기다 코로나 이전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던 내수, 즉 소비와 투자는 더 위축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매출이 작년의 절반도 안 되는 소상공인이 81.7%였고 3월 매출이 0원이었다는 대답도 16%에 달했다. 정부가 경기부양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규모와 시기, 방법 등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나쁜 경제지표들이 쏟아지면 정부는 코로나19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고 할 수 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다고, 가뭄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이번에는 태풍이 와서 싹 쓸어간 격이다. 가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태풍이 오자 가뭄으로 인한 피해는 간 데 없고 천재지변(天災地變)인 태풍 탓만 하는 것이다.

‘코로나 타령’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지금 당장 필요한 초단기 및 단기대책과 우리 경제의 미래를 내다보는 중장기대책을 내놓는 2층(two-tier) 전략을 수립하고 하루 빨리 시행에 나서야 한다. 초단기 및 단기대책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과 계층을 어떻게 도움으로써 이 난국을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다. 기업이나 사람이나 한 번 골병이 들고 나면 고치기는 더 어렵다. 특히 기업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시급하게 서둘러야 한다. 이참에 필요하다면 소주성은 물론 최저임금, 주 52시간, 탈원전 등도 과감하게 손질을 해야 할 것이다. 위기가 왔을 때 위기를 탓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기대책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중장기 대책이다. 우리 경제와 사회의 미래, 즉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만 해도 전 국민의 70%만 주면 9조1000억원이지만 1인당 50만원씩 전 국민에게 주면 25조원이나 된다. 기왕 준다고 했으니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5조원, 1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미래 성장동력에다 투입하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날 것이다. 따라서 재난지원금의 총 지원규모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시작하면 미국과 중국 등은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4차 산업혁명은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넷플릭스(Netflix), 구글(Google) 등 FANG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초대형 IT기업들은 물론, 알리바바 등 중국의 IT기업들도 숨죽이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갈리면서 승자가 독식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100명의 2등이 1명의 1등을 못 당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문제까지 안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호베르투 아제베두 총장은 "정책입안자들은 팬데믹 이후를 계획하기 시작해야 한다"면서 “지금 취하는 결정이 향후 회복과 글로벌 성장 전망의 미래 형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다. 그 결과를 놓고 누구누구의 잘못이냐고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탓 네 탓 따질 때가 아니다. 끝이 보이고 있는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시간적 여유도 없다. 코로나 위기라는 미증유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 국민과 정부, 여야, 노동조합 등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코로나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시대의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꼼꼼하게 그려야 할 때이다. 다음 정부의 적폐청산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천천히, 그러나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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