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이 극에 달할 때 투자하라.”
미국 역발상 투자의 대가로 꼽히는 고(故) 존 템플턴이 투자 제1원칙으로 강조했던 말이다. 물론 그도 기업의 본질이 부실할 경우에는 예외로 뒀다. 외부 환경에 의해 시장의 전반적인 조정이 있을 경우에 한해 적용된 원칙이라는 뜻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은 항공업계와 그 후방에 있는 여행·숙박업계에 딱 들어맞는다. 사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올해도 이들 업계는 성장이 예상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여파가 종식 국면에 들어서고, 지난해 일본의 경제 도발도 서서히 수그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장밋빛 전망은 ‘핏빛’으로 바뀌었다. 인천공항공사의 3월 항공통계에 따르면 국제선 여객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9.7% 감소한 60만2967명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 24일에는 인천공항의 하루 이용객이 9316명으로 2001년 개항 이후 처음으로 1만명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 인천공항의 연간여객은 70%가량 줄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련 업계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휴업과 폐업이 속출하면서 임직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의 지상조업사 이스타포트가 폐업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모회사인 이스타항공이 최근 이스타포트 전 지점과 계약을 해지했다. 직원이 200여명에 이르는 이스타포트는 이스타항공의 여객조업만을 담당하고 있다.
이스타항공도 인력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일반직 등 전 직원 1600여명을 대상으로 22% 수준인 300명 안팎을 구조조정한다. 1∼2년 차 수습 부기장 80여명은 이미 지난 1일자로 계약해지를 통보 받은 상태다.
LCC뿐만 아니라 국내 1, 2위의 대형항공사(FSC)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마찬가지 신세다. 대한항공은 오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6개월간 직원 휴업에 들어간다. 대상이 전체 인원의 7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분기에만 3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항공업계가 무너지자 도미노처럼 숙박·여행업계도 붕괴되고 있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따른 예약 급감으로 호텔업계가 본 피해는 지난 3월에만 5800억원에 이른다. 한국여행업협회(KATA)의 여행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각 지방자치단체나 자치구에 폐업을 신고한 국내외 일반 여행사는 192곳에 이른다.
피해가 너무 크고 광범위하다 보니 정부도 어디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막막한 모양새다. 지원 대상과 규모 등을 놓고 지금도 오락가락한다. 물론 이해도 된다. 전에 없는 위기이다 보니 사실 정답이 없다. 비관론이 극에 달할 때 투자하라는 템플론의 역발상이 필요한 이유다.
그가 역발상 투자에 전제했던 것처럼 이번 위기는 항공업계 부실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아주 크다. 투자하면 최소한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로서는 실업자 증가를 막고 기간산업으로서 항공업계를 지탱해줄 수 있으니 ‘1석3조’다.
투자 방법이 문제다. 문득 며칠 전 대구로 코로나19 지원을 갔던 의료진과 소방관들의 해단식을 보며 묘안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한 사실상 유일무이한 국가로 평가된다.
그 배경에는 일선에 섰던 의료진과 소방관,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언제가 됐든 코로나19 종식 국면에 이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들에게 충분히 쉬고 돌아오라고 여행상품을 주면 어떨까.
어림잡아 100만명에게 100만원짜리 여행상품을 돌린다고 하면 1조원이면 된다. 이를 선구매한다면 당장 항공업계와 여행업계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정부도 기업에 ‘공돈’을 쓴다는 비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미 정부는 비슷한 아이디어를 냈다. 항공업계 유동성 공급을 위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의 연간 예산에 계획된 항공권 구매대금 1600억원을 선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어렵지도 않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