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아직도 우리 사회가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파주에 있는 ‘엄마품동산’을 찾았다. 이 작은 공원은 재작년 9월에 파주시가 조성한 것으로, 해외 입양인의 고향 만들기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미군 기지였던 캠프 하우즈 안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공원에는 ‘조개’를 모티브로 한 상징조형물과 재미 작가 김원숙씨의 기증작품 ‘Shadow child’, 그리고 오래된 ‘모자’상 등 세 가지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공원은 원래 20만여명에 이르는 해외 입양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따뜻한 모국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공원의 가운데에 있는 상징조형물은 옛날 어머니들의 모시적삼을 본떠 만든 것으로 '엄마 품'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Shadow child’는 한 아가씨가 서 있는 모습과 그녀의 그림자를 형상화했는데, 그림자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어서 기지촌 여성의 삶을 표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허름한 모자상은 저고리를 입고 있는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원래 파주에 있던 한 산부인과 원장이 자신이 진료한 여성들의 낙태수술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만든 것인데, 여기에 옮겨 놓은 것이다. 아직은 이 조각품들 외에 다른 시설이 없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이 공원은 우리가 가슴에 새길 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공원의 조성은 2018년 2월 기지촌 성매매에 대한 우리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서울고등법원 판결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기지촌 성매매에 종사했던 여성 120명은 2014년 그동안의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대한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정부가 성매매업 종사를 강요하거나 촉진하기 위해 기지촌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2심은 정부가 성매매를 매개·방조했다고 보고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이 판결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여성인권운동이 거둔 또 하나의 중요한 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캠프 하우즈 부지에 일종의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하고 그 중심에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한다는 구상은 이런 의견에 바탕을 둔 좋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중심에는 기지촌 주민들에게 간접적으로 가해지고 있었던 스티그마를 불식시켜야 하고, 기지촌 여성들이 안고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하며, 해외 입양인들에게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복합적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이것이 의미있는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직접적·간접적 이해 당사자들인 주민들과 기지촌 여성들, 그리고 해외 입양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수렴한 바탕 위에서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미국의 오 아리사 교수가 출간한 책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를 보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외 입양의 구조와 현대사의 단면들을 잘 이해할 수가 있는데, 기지촌의 역사나 기지촌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도 이와 같은 수준으로 더 측적될 필요가 있다. 아직은 기지촌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가 충분히 수집되어 있지 않고, 트라우마센터의 잠재적 고객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조사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무엇인가를 빨리 성취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섣불리 공사 위주의 사업을 시작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무튼 6·25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올해에 파주시의 구상이 의미있는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