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깨끗한 이름'의 검사와 '더러운 이름'의 검사

2020-02-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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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직무 윤리는 정권 아닌 법과 원칙에 충성하는 것

인사 보은·출세 욕구에 직무 윤리 저버리는 풍토 만연

불이익 감수하고 바른 길 가려는 검사들 주목 받아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 전·현직 비서관 등 현 정권 비리 의혹 관련자들의 기소 문제를 놓고 검찰 고위 간부 두 사람이 여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았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다. 두 사람은 이들의 기소를 반대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검찰 간부의 모습을 보면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지, 아니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하는 검사의 본질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조국 아들의 인턴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한 혐의를 받는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에 수사팀과 의견을 달리 했다. 수사팀이 최 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고 보고하고  결재를 요청했으나 끝내 결재를 하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세 차례 기소 지시마저 모두 거부했다. 이 지검장은 “대면 조사도 하지 않고 기소하는 것은 수사 절차 상 문제가 있으므로 소환 조사 뒤 사건을 처리하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 기소 반대한 두 검찰 간부

이 지검장은 백원우 전 비서관,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연루자 13명의 기소에도 반대 의견을 냈다. 이 문제를 논의한 대검 회의 참석자 10여명 중 유일한 반대 의견이었다. 이 지검장은 황 전 청장에 대해선 소환 조사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부장검사 회의나 전문 수사 자문단 회의를 열어 논의하자고 했다.

수사와 기소 절차는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다. 그런데 이 법에는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대면 조사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검사는 대면 조사를 하든 안 하든 압수수색이나 참고인들의 진술을 통해 확보한 증거에 비춰 기소가 마땅하다고 판단하면 기소할 수 있다. 소환 조사 여부가  아니라 기소할 만큼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도 이 지검장은 소환 조사 없이 기소하는 것은 ‘절차 상’ 문제가 있다고 했다. 더욱이 수사팀은 최 비서관에게 세 차례나 출석을 요구했으나 최 비서관이 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환 조사 뒤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과연 합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지검장 주장대로라면 피의자가 소환 요구에 끝까지 불응하면 아무리 증거가 확보됐더라도 기소하지 못하는 불합리가 생긴다. 이런 문제점은 소환 요구를 거부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의 경우에도 똑같다.

부장검사 회의나 전문 수사 자문단 회의를 거쳐 판단하자고 한 주장은 어떤가. 부장검사 회의나 전문 수사 자문단 회의가 합리적 의사 결정 절차로서 자리잡아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라면 그런 절차를 거치자는 주장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부장검사 회의나 전문 수사 자문단 회의를 통한 기소 여부 결정은 전례가 드물다. 그런 회의를 열어서 하는 것이 합리적 의사 결정 절차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은 것이다. 

특히 전문 수사 자문단 논의를 거치자는 주장은 이 제도의 취지와 맞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전문 수사 자문단 제도(형사소송법 제245조의 2)는 전문가의 전문 지식에 의한 설명이나 의견을 들어 사실 관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는 사건의 경우 전문가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첨단산업이나 지적재산권, 국제금융 등의 전문 분야 사건이 그런 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선거 공약 지원, 경쟁 후보 매수, 하명 수사 의혹 등 통상적인 사건이다. ‘전문가의 전문 지식에 의한 설명이나 의견’이 필요한  전문 분야 사건이라고 하기 어렵다.

◆'정권 충견' 소리 들으면서 부끄러운 줄도 몰랐던 검찰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유재수 감찰을 중단시킨 혐의(직권 남용)를 받는 조국 전 민정수석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판사는 조국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른 이유로 기각하면서도 감찰 중단 혐의에 대해 “죄질이 나쁘다”고 했다. 권 판사는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키고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고 말했다. 영장담당 판사는 실질 심사 과정에서 검찰 측 주장과 조국 및 그 변호인 측 주장을 모두 듣고 수사 기록과 증거물을 살펴 본 뒤 그렇게 판단했다. 그런데도 심재철 반부패부장은 무혐의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성윤 지검장과 심재철 반부패부장의 주장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그들이 정말로 순수한 동기에서 그런 주장을 폈다면 검사로서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많은 검사들을 지휘 감독하는 고위 간부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췄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내심으론 자신들의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검사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이다. 그런 사람들이 동료 검사들의 판단과 동떨어진 판단을 할 만큼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이들이 속으론 기소가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다른 주장을 폈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은 이 경우가 더 큰 문제다. 내심과 다른 주장을 했다면 왜 그랬을까. 자신들을 좋은 보직에 앉힌 정권, 구체적으론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보은 의식 때문일 수도 있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다. 더 나쁘게 말하면 당장은 비난을 받더라도 정권에 잘 보여 출세하자는 욕구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게 사실이라면 검사로서의 직무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검사는 일반 공무원과 직무 윤리가 다르다. 민주주의에서 일반 공무원의 직무 윤리는 선거로 국정 운영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의 정책을 따르는 것이다. 최저 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부동산 대책 등 정부가 결정한 정책은 설사 자기 철학과는 다르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더라도 충실히 집행하는 것이 그들의 직무 윤리다.

그러나 검사의 직무 윤리는 법과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수사와 기소라는 검사 직무의 본성 상 그렇다. 수사와 기소는 증거와 법리에 따라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나 장관의 지시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살인·강간 사건이 벌어졌다고 치자. 아무리 대통령과 장관이 철저히 수사해 범인들을 처벌하라고 지시했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증거도 적법 절차를 거쳐 수집해야만 유효하다. 그래서 검사는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닌 법과 원칙에 충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검사의 직무 윤리다. 일반 형사 사건에서도 직무 윤리를 지켜야 하지만 정치적 사건에선 더욱 그렇다.

차관에게 '장관 불법 지시 막으라' 직언한 검사 등장 큰 변화

과거 검찰이 많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은 이유는 직무 윤리를 내던지고 정권에만 충성했기 때문이다. 인사권자에게 잘 보여 승진하고 좋은 보직을 얻으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악습이 쌓여 검찰은 정권의 충견이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부끄러워할 줄도 몰랐던 게 검사들이고 검찰이다. 이번에 추미애 장관의 강행 인사로 많은 검사들이 승진하거나 좋은 보직을 받았다. 정권에 충성하려는 검사들이 많아질지 모른다.

검사도 사람이다. 출세하고 싶은 욕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직무 윤리가 요구된다. 실제로 검사로서의 직무 윤리 또는 정의감을 출세하려는 욕구보다 더 존중하고 지키려 하는 검사들도 있다. 정희도 대검 감찰2과장(부장검사)이 대표적이다. 그는 1월 29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쓴 ‘법무부 차관님께’라는 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며 김오수 법무부 차관에게 ‘직을 걸고 장관의 불법 지시를 막아달라’고 했다. 정 과장은 “어제(28일) 법무부가 대검 등에 중요 사건을 처리할 때 내외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지시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에 개입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고 이는 명백한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했다. 정 과장은 “지난 1월 23일 이뤄진 청와대 모 비서관(최강욱 비서관을 지칭) 기소와 관련한 법무부의 (수사팀) 감찰 검토도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했다. “검찰총장 지휘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기소에 대해 감찰을 한다면 이는 명백한 직권 남용으로서 위법”이라고 했다. 정 과장은 “장관님은 정치인이지만 차관님은 정치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법률가”라며 “차관님은 이런 위법에 눈감지 말고 직을 걸고 막으셨어야 한다. 더 이상 법률가의 양심을 저버리지 마시길 바란다”고 했다. 정 과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글을 맺었다. “ ‘검사가 됐으면 출세 다 한 거다. 추하게 살지 마라.’ 초임 시절 어느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위법에는 순응하지 않겠습니다. 정치 검찰은 거부하겠습니다.”

양석조 대검 선임연구관은 조국 무혐의를 주장한 심재철 반부패부장을 상갓집에서 “그게 왜 무혐의냐. 당신이 검사냐, 조국 변호인이냐”고 공개 비판했다. 양 연구관이 사석에서 예의를 갖추지 않은 표현으로 상관을 비판한 것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그 본래 뜻은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검사로서 직무 윤리에 충실해야 하지 않느냐고 비판한 것이다.

'깨끗한 이름', '더러운 이름' 모두 후세에 남을 것

정희도 과장과 양석조 선임연구관의 행동은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권에 찍혀 인사 불이익을 당할까봐 보고도 못 본 체하던 게 검사들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인사 불이익을 감수하고 할 말을 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번 인사에서 좌천됐다. 두 검사는 인사권자보다 법과 원칙에 충성하는 검사, 직무 윤리에 충실한 검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검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이런 검사들이 검찰의 주류가 돼야 진짜 검찰 개혁도 이뤄진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 열전>에서 말한다. “삐뚤어진 길을 가면서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올바른 길을 가면서도 화를 당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천도(天道)라는 게 있다면 어째서 이럴 수가 있는가. 나는 이에 대해서 매우 의혹스러움을 느낀다. 만약에 이런 것이 천도라고 한다면 그 천도는 과연 맞는 것인가, 틀린 것인가. 착한 사람들의 명성이 파묻혀서 후세에 칭송되지 않는다면 정말 비통하리라!” 사마천은 ‘깨끗한 이름’과 ‘더러운 이름’을 기록에 남겨 후세가 그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는 게 진짜 천도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사기 열전을 썼다.

검찰에도 ‘깨끗한 이름’으로 기억될 검사들과 ‘더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검사들이 있다. 요즘 언론에는 그런 검사들 얘기가 자주 보도된다. 검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검사 열전’이라고 할 만하다. 언론의 ‘검사 열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 이름은 후세가 기억하게 될 것이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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