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폴크스바겐의 허버트 디에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앞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경영진 모임에서 올해를 전망하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 글로벌 명차의 기준을 만들어왔던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친환경 기준 강화와 전기차에 대한 수요 증가로 내연기관 시장을 호령해왔던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테슬라에 시총 2위 내준 폴크스바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독일 명차 제조사들이 빛을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문에 따르면 독일 대표 명차 다임러, 폴크스바겐, BMW 등은 여전히 양호한 신차 판매 성적을 내고 있지만, 수익성과 시장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는 처지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 침체, 배기가스 배출 조작에 따른 소송비와 평판 악화, 차세대 차량 개발에 투자되는 거액의 연구·개발비도 이들 업체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침체기에 들어섰다. 자동차 판매량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감소했다. 일각에선 세계 자동차 판매가 이미 정점을 찍었고 앞으로는 계속 위축되는 일만 남았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올해에는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0.3% 더 감소할 것이라고 LMC오토모티브는 전망했다.
설상가상 다임러, BMW, 폴크스바겐, 아우디 등 독일 제조사들은 전부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명성이 직격탄을 맞았을 뿐 아니라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수소차 등 신기술 투자에 필요한 재원의 상당량을 소송비와 벌금에 쓰고 있는 셈이다. 지난 3분기에 걸쳐 다임러가 관련 소송비로 쓴 비용은 40억 달러가 넘는다. 다임러는 앞으로도 관련 분쟁에 15억 달러가 더 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의 마진율도 악화일로다. 에버코어ISI 자료에 따르면 다임러의 자동차 사업 마진율은 2013년 9%에서 지난해 3%까지 낮아졌다. BMW의 마진율은 2012년 11%로 두 자릿수였으나 지난해에는 5%에 불과했다.
◆BMW 테슬라에 밀릴 것···10년내 일자리 41만개 증발 전망도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지는 별'이라면, 미국 테슬라는 '뜨는 별'로 통한다. 독일 기업들이 수백억 달러를 들여 전기차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테슬라는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독일 서부 뒤스부르크-에센 대학의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는 "오늘날 (전기차) 기준은 테슬라"라면서 "10년 후 테슬라는 BMW 만큼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
테슬라는 22일 주가가 4% 뛰어오르면서 주당 569.56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에선 일본 도요타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이다.
2014년부터 테슬라의 미국 시장 매출이 10배 폭증하는 동안 다임러와 BMW의 시장 점유율은 내리막을 걸었다. 아우디는 지난 5년 동안 매출이 늘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좀처럼 늘리지 못하고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독일을 '자동차 왕국'으로 올려놓은 명차 업계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워지면서 독일 경제도 충격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달한다. 독일의 자동차 산업 종사자는 83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고용 의존도 역시 높다.
지난해 독일 자동차 제조사와 공급업체들은 5만명 이상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또 최근 독일 정부 산하의 전문가자문그룹인 국가미래자동차플랫폼(NPM)'은 2030년까지 41만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전망해 충격을 던졌다. 유럽연합(EU)의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강화 계획 등으로 자동차 산업이 격변을 맞이하면서 내연기관과 디젤 엔진 부품 수요가 줄면 공장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