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칼럼] 우리 경제는 이제 '5低3高' 시대...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2020-01-22 16:27
  • 글자크기 설정

[최성환 교수]


“경영의 속도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2016년 일본의 샤프가 대만의 훙하이정밀(폭스콘)에 인수된 다음 마지막 주주총회에서 샤프의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을 인지하기도 어렵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면서 그에 따라 전략과 수단을 바꿔 가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바뀌는 패러다임을 쫓아가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5년, 10년 우리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갈 패러다임의 변화, 즉 메가 트렌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현재 우리 경제와 사회가 겪고 있으면서 앞으로도 겪어야 할 메가 트렌드는 ‘5저 3고’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5저(低)는 이미 낮아졌거나 계속 낮아지고 있는 다섯 가지 트렌드, 즉 저성장⋅저고용⋅저금리⋅저물가⋅저자산가치를 의미한다. 3고(高)는 계속 높아지고 있거나 이미 높아진 세 가지 트렌드, 즉 고령화⋅고소득화⋅고디지털화를 말한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변화는 최근 성장률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성장률이 막판에 크게 늘린 재정지출 덕분에 간신히 2.0%를 기록했다. 하지만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올해도 잘해야 2% 초반대에 머물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1953년에 성장률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2~3%대 성장이 10년 연속 이어지는 초유의 기록이다. 성장률이 2%대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고용이 제대로 늘어날 리가 없다. 2018년 9만7000명에 그쳤던 취업자 증가 수가 작년에는 30만1000명으로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정지출이 집중된 60세 이상의 일자리(+37만7000명)가 주로 늘어났다. 반면 정작 늘어나야 할 청장년, 특히 30대(-5만3000명)와 40대(-16만2000명)의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30~40대 인구 자체가 줄어든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고용의 허리가 허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이 가져오는 또 다른 부산물이 저금리와 저물가 현상이다. 저성장과 저고용으로 저소득이 이어지면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고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물가를 크게 자극할 정도로 늘어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의 가치가 크게 오르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일부 지역에서 급등하고 있는 부동산의 경우 시기와 지역, 호재 여부에 따라 등락이 이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락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다.

고령화와 고소득화, 고디지털화를 의미하는 3고 또한 5저 못지않게 체감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라는 초유의 저출산에다 급격한 수명 연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불과 5년 후인 2025년이면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2019년부터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20년대에는 연평균 33만명씩 감소할 전망이다. 광명시 또는 아산시 규모의 도시, 그것도 15~64세로만 구성된 젊은 중초고령사회규모 도시가 매년 하나씩 대한민국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2029년에는 총인구가 감소로 돌아서고 2050년이면 고령화비율(총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38.1%로 전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될 전망이다. 그나마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은 저성장이라고는 해도 매년 소득이 늘어나면서 2017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다만 앞으로의 지속가능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고(高)디지털화는 4차 산업혁명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이상의 5저 3고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과 흐름을 요약해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5저 3고가 산발적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하나의 트렌드를 보면 천천히 바뀌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트렌드가 한꺼번에 바뀐다는 것은 거대 쓰나미와 같은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메가 시프트(Mega-shift)’, 즉 메가 트렌드 또는 패러다임의 동시다발적 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온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경우이다. 성장률이 2%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고성장시대의 환상에 젖어 있다거나 부동산 불패를 주장한다거나 하는 등이다. 소득 3만 달러 시대, 디지털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못살던 때와 아날로그시대만 떠올리면서 과거의 성공방식이나 법칙에 목매달고 있을 수도 있다.

“When the music changes, so does the dance.”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춤을 잘 추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잘 들어맞는 속담이다. 그러나 속담과 달리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난 수백년 동안 변화하는 세상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따라 국가와 사회, 산업과 기업, 개개인의 성향과 비전⋅전략⋅정책 등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음악이 바뀐 줄도 모르고 출 수 있는 춤도 과거의 한두 가지밖에 없다면 그런 국가와 사회, 산업과 기업, 개인이 과연 보다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요즘 우리 사회와 경제, 정치를 보면서 더욱 암울해지는 이유이다.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