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15개월 만에 공식석상에서 마주앉았다. 사상 최악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 개선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일 정상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대화로서의 해결’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강제동원 문제로 촉발된 한·일 양국의 갈등 해소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일 전문가들 역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보고 만일의 경우 이 문제가 한·일의 경제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강제동원 문제로 촉발된 한·일 양국의 갈등 해소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일 전문가들 역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보고 만일의 경우 이 문제가 한·일의 경제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강제동원’ 갈등, 한·일 ‘경제전쟁’으로 번질 위험 존재한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학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지난 17일 ‘한·일 기자 교류 프로그램’으로 도쿄를 방문한 한국 외교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현금화 조치가 실행될 경우, 일본 역시 한국 경제에 가시적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의 배상 판결 당시 ‘사법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지적하며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냈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지만, 한·일 청구권 협정 역시 존중하겠다’는 말을 해야 했다고 주장, “문 의장과 입법부는 판결의 핵심을 살리며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해법을 제시했는데 문 정부는 좀 더 앞서 해결책을 찾지 않았다는 점이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입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행정부는 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 것인지 안타깝다”며 “‘문희상 안’이 문제 해결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입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총리 관저에서 결정을 내린’ 일본 수출규제 조치로 한국 산업이 입은 피해는 없었으며 오히려 일본 관광업과 맥주 수출 등이 타격을 입었다고도 했다.
사와다 가츠미 일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도 19일 인터뷰에서 자민당과 관료들의 한·일 관계 관련 최대 관심사는 '강제징용 문제'라며 문희상 안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발적 기부는 일본도 받아들일 수 있다. 문희상 안을 괜찮게 생각하는 비율이 60% 안팎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금화에 대해서도 “현금화를 한다고 해도 일본이 판결을 받아들일 태세도 없고, 일본 기업의 사죄를 받은 것도 아니다. 사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전했다.
◆“한·일 역사 문제 인식 차이, 강제동원 문제 해결 쉽지 않아”
이종원 와세다대학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는 19일 인터뷰에서 역사 문제를 바라보는 한·일 양국의 인식 차이가 걸림돌로 작용, 강제동원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단순히 징용문제뿐만 아니고 한·일 역사 문제는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 골이 깊은데 그동안은 그걸 관리하며 왔다. 그런데 점점 한국은 민주화, 일본은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보수화, 수정주의가 생기면서 구조적인 골이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징용 문제 테크니컬 처리 방식이 몇 개 있을 것으로 보는데, 특히 한국은 이걸 테크니컬 처리하기 위해서, 문희상 안은 기술적인 대응이다”며 “(일본 정부도) 원리파로선 반발이 있지만, 아베 정부는 정치적 타협으로 원리와 분리해서, 우선 이 문제를 잠정적 관리하기 위해 문희상 안으로 하려고 하는데, 일본 정부는 원리적 자세”라고 분석했다.
지난 7월 이후 이뤄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선 이전과 다른 자세라고 판단했다. 과거 일본은 역사, 경제, 안전보장 문제를 별도로 봤는데 이번에는 역사 문제를 경제와 안전보장 분야에 적용한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 교수는 “1965년 이후 반세기 동안 한·일 관계는 3개의 축이 따로 움직였다. 역사에는 골이 있다. 역사 문제는 타협하고 비판하면서 가져왔다. 그러면서도 경제와 안전보장은 별도로 봤다”고 말했다.
역사의 골을 가지면서도 경제적으로 협력하면서 윈윈(Win-Win)하며, 차이는 있지만 공통 기반을 쌓아왔다. 안전보장도 냉전기 때는 협력을 했다는 것이다. 역사 문제에서는 싸우면서도 경제와 안전보장에서 서로 협력하는, 전체로 보면 밸런스가 맞는 구조였다는 설명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교수는 7월 이후 아베 총리가 취한 조치에 대해 “이때까지 흐름과는 다른 조치다. 우월한 일본의 경제력을 징용문제 카드로서, 공개적으로 사용한 첫 케이스”라고 했다. 이어 “이전 외교교섭에서 했을지는 모르지만 공개 외교 압박을 가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일본 외교로서 상당히 큰 조치”라고 지적했다.
경제 현실이 밀접하고 복잡한데 정치적인 판단으로 끊어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재차 언급하며 공통으로 정치가들이 한·일 간의 경제 현실을 너무 모르고 감정적으로 정치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움직임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징용 역사 문제를 푸는 게, 이때까지와는 차원이 좀 다른데 (경제와 역사) 엮은 것도 좀 새롭지만, 경제도 (한·일이) 합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소니, 삼성 하듯이 반도체를 대상으로 했다면 첨단 기술에 대한 일종의 견제처럼도 보인다”며 미국이 중국 화웨이를 규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언급했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에서 경합하는 부분이 생기니 단순한 공통부분은 이야기하기 어렵고, 일종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해석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갈등 밑으로 구조적으로 지각이 바뀌고 있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 교수는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 대해 “한마디로, 우선 풀어야 하는 것은 중앙정부 국가 차원인데, 재계도 그렇고 전부 다 우선해야 되는 것은 각각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자기 이익이란 관점에서 어떤 한·일 관계로 가는 게 이익이 되는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