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가 현 시점에서 현실화 가능성이 낮은 대북 제재 완화 방안을 들고 나왔다.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미국에 적극적인 북·미 대화를 촉구하는 한편 북·중·러 3국 간 정치적 밀월 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 일정 수준의 돈벌이를 허용해주는 게 골자다.
중·러가 제출한 결의안 초안에는 수산물과 섬유 등 경공업 제품의 금수 조치를 풀어주고 해외에서 근로 중인 북한 노동자의 강제 송환을 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수산물과 섬유 제품은 북한의 주력 수출 품목이다.
북한산 수산물의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의 수입 업체들은 제재가 시행된 2017년 8월 이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지린성 훈춘 등 북·중 접경 지역의 경우 몇 시간 동안 북한에 넘어가 수산물을 먹고 되돌아오는 관광 상품까지 등장할 정도로 중국 내 북한산 수산물은 씨가 마른 상태다.
2017년 9월부터 섬유 제품의 수출이 금지된 것도 북한 입장에서는 상당한 타격이다.
실제 무역협회 자료를 살펴보면 제재 시행 전인 2015년 북한의 10대 수출 품목 중 외투·티셔츠 등 섬유 제품이 절반을 차지했지만 지난해의 경우 가발 정도만 유일하게 포함됐다.
해외에서 근로하는 북한 노동자의 송환 여부도 관심사다. 송환 시한인 22일이 일주일도 채 안 남았지만 베이징의 북한 식당 점원 등은 여전히 근무 중이다.
북한은 해외 노동자들을 통해 상당 수준의 달러를 조달해 왔다. 이번에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나선 중국과 러시아가 송환 시한 이후에도 편법적 근로를 용인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송환 시한이 종료된 이후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는 내년 3월 22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 근로를 지속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며 "안보리 회의의 특성상 (송환 이행 여부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국가에 입증 책임이 있는 만큼 정확한 사실 관계를 가리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남북 간 '철도·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도 언급됐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뒤 나온 '4·27 판문점 선언'에 담긴 사업으로, 착공식은 열렸지만 공사 시작을 위한 물자·장비 반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초안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정상화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목소리 낸 북·중·러, 현실화 어려워
중국과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미국에 북·미 협상 재개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최근 두 차례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도발 수위를 높이며 미국을 향해 전향적인 협상안을 내놓으라는 북한에 맞장구를 쳐 준 셈이다.
중·러는 초안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를 구축하고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노력에 동참하면서 북·미 간 모든 수준의 대화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도 양국은 "대북 제재는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라며 제재 완화를 주장한 바 있다.
미국에 맞서는 북·중·러 3국의 정치적 밀월 관계를 과시하는 효과도 예상된다.
올해 수교 70주년을 맞은 북·중은 정치·군사·문화적 교류를 확대해 왔다. 북·러 간에도 지난달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러 등 고위급 교류가 빈번하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미 협상이 결렬될 경우 북한이 기댈 곳은 결국 중국과 러시아뿐"이라며 "이번 초안 제출은 유엔에서 북한의 뒷배가 돼 주겠다는 중·러의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북 제재 완화가 이뤄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전날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들은(북한) 우리를 어떻게 접촉할지 안다"며 북·미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발신하기도 했지만 대북 제재 완화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금은 제재 완화를 고려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보유한 영국과 프랑스도 미국과 같은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중·러가 제출한 결의안 초안와 관련해 안보리 표결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