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시론]전두환 사면이 낳은 폐해, 박근혜 사면이 낳을 폐해

2019-11-24 14:46
  • 글자크기 설정

지난 11월 7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모습이 포착된 전두환 전대통령.[사진=정의당 제공]



무기수 전두환이 형량대로 지금도 감옥에 있다면? 역사에서 가정은 금물이라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은 진작 규명되지 않았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12·12 군부쿠데타’와 이후 전두환 군사독재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는 등 최대 피해자였다. 그러나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단행한 전두환 사면은 이후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을 놓은 셈이 되었다.

전두환의 뼈저린 반성을 수반하지 않은 사면은 마치 무죄 석방인 것처럼 왜곡되어 5·18민주화 운동의 진상규명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전두환 추종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하는 회고록이나 법원의 벌금형 판결에도 거듭되는 지만원의 ‘북한군 개입설’ 억지는 전두환이 감옥에 있다면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전두환의 조건 없는 사면은 TK의 지지를 넓혀 지역갈등을 사라지게 하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조급한’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지만 결과는 지역차별을 온존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을 지금도 추종하는 극우세력에게 망상적 정당성만 부여한 꼴이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해 사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국민분열을 장기화시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부터 그에 대한 사면 요구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그는 옥중에서 ‘우리공화당’을 창당하면서 공공연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국민 여론도 사면에 반대하는 의견이 아직은 많지만 흐름은 온정주의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사면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면 ‘국기부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지지자들의 실망은 물론 자칫 ‘국기부대’의 독자세력화를 부추겨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좁힐 위험을 안고 있는 도박이다. 민주당은 사면이라는 포용력을 보여줌으로써 일부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한편, 보수층의 분열과 자유한국당의 위축을 달성한다는 달콤한 계산을 할 수 있겠지만 일부 ‘집토끼’의 이탈은 물론 ‘촛불혁명’을 무산시키고 역사를 퇴행시킨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적어도 걸림돌을 놓지 않으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반드시 국정농단에 대한 에두르지 않는 ‘반성과 사죄가 전제된 사면’으로 설계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광주 학살과 세월호 수장이 같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마치 ‘조자룡 헌 칼 쓰듯이’ 사면을 거론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태이다. 사면을 허투루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국정농단의 주범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정책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국격을 높이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관성에는 대내논리와 대외논리의 일치도 포함된다. 미국이 대외적으로는 세계평화를 명분으로 핵무기를 제거하려고 북한을 압박하면서 국내에서는 총기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누구나 총기를 소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는 미래지향을 위해서라도 과거사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대내적으로는 ‘반성 없는 용서’를 반복한다면 위선적이다. 독일의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독일이 기회 있을 때마다 나치 과거에 반성하는 이유는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적어도 독일 정치권에서는 공감대가 이루어진 역사의식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 5‧18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있었어야 할 것이고, 책임자에 대해 인도주의적 ‘용서’를 베풀고자 한다면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일반인이 법원에서 ‘개전의 정’을 인정받으려면 매일 반성문을 써야 한다.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이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40년 가까이 지나서도 지지부진한 이유는 ‘반성 없는 용서’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허한 ‘국민통합’을 이유로 ‘반성 없는 용서’를 반복한다면 국정농단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어 전두환 사면보다 더 큰 후폭풍을 초래할 것이다. 대한민국에 역사적 과오는 한 번으로도 너무 많다.

                                                김호균 (명지대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