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19일(현지시간) 뉴욕맨해튼에서 특파원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아는 분야가 아니면 사업을 벌리고 싶지 않다. 있는 것을 지키기도 어려운 환경”이라며 “대한항공이 자리를 잡으면 정리할 사업은 있을 것 같다. 항공운송과 제작, 여행업, 호텔 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1차 구조조정 대상, 정석기업 등 부동산 관련사
조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 가장 먼저 관심이 쏠리는 곳은 정석기업이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이 지분 48.27% 보유한 기업으로 입대차서비스, 빌딩관리대행, 주차운영관리 등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조원태 회장이 언급한 ‘미래 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
정석기업의 또 다른 주요주주는 고(故) 조양호 회장 지분(20.64%)을 상속받은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6.87%), 조원태 회장(4.59%),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59%), 조현민 한진칼 전무(4.59%) 등이다. 이밖에도 정석물류학술재단이 10%,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 맏사위 이태희 변호사가 8.07%, 자사주 13.02%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총수일가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한진그룹이 강성부펀드(KCGI)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석기업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높은 한진칼 경영권을 뺏기면 계열사도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양호 회장이 보유했던 한진칼 지분(17.84%)을 확보해야 하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재원이 필요했다.
조원태 회장 등 상속을 받은 주체들은 향후 5년 동안 총 6차례에 걸쳐 상속세는 납부해야 한다. 현재는 1차분까지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석기업이 그룹 구조조정의 첫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중간지주사인 ㈜한진 자회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부동산개발을 담당하는 서울복합물류프로젝트금융투자와 비거주용부동산 관리의 서울복합물류자산관리다. 정석기업이 두 기업을 품으면 부동산 업무에 더욱 특화된다. 한진칼과 총수일가가 정석기업 매각 후 확보한 자금으로 각각 자사주 매입과 추가 지분 확보를 병행하면 경영권 방어는 굳건해진다.
◆항공운송만 남기면 경영권 분쟁 종료될 수도
조원태 회장 발언 중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부분은 ‘항공운송’이다. 단순 ‘운송’이 아닌 특정 영역을 지목한 탓이다. 과거 한진그룹은 육해공을 아우르는 운송 전문 그룹이었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육상과 항공만 남았다.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며 한진그룹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백기사로 지목된 델타항공의 등장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델타항공 계열사는 온전히 ‘항공’에만 집중돼 있다. 지난 수십년간 쌓인 노하우와 미국 내 혹독한 항공업 구조조정을 거친 델타항공의 ‘경험’은 한진그룹 입장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따라서 최대 규모 구조조정을 한다면 정석기업과 함께 그룹 내 육상운송 기업을 모두 자회사로 두고 있는 ㈜한진을 통째로 매각하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정석기업 활용 가능성은 이전부터 높은 상황”이라며 “육상운송을 포기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항공-호텔’을 아우르는 ‘여행’ 개념으로 본다면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그는 “자산매각을 통해 한진칼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대한항공 경쟁력도 높아진다면 경영권 분쟁도 종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총수일가에 유리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