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손해배상청구 첫 재판 “일본 당당하면 나와라”

2019-11-14 09:23
  • 글자크기 설정

이용수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는 재판부에 "일본 나와야 한다" 요청

3년 만에 시작된 일본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일본 측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 측에 “당당하면 재판에 나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유석동)는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20명의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첫 변론을 진행했다.

원고 측 변호인은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의 연령을 고려했을 때 마지막 소송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피해자들은) 당시 일본과 군인에 의해 위안소에서 조직적인 성폭력으로 희생됐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들은 단지 금전적인 배상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72년 전 침해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권을 회복하기 위해 재판을 신청했다”며 “사법부에서 일본군의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재판에는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인 길원옥·이용수·이옥선 할머니들이 출석했다. 이용수·이옥선 할머니는 재판부에 “일본이 재판에 나와야 한다”고 요청했다.

발언권을 얻어 재판대 옆으로 나온 이용수 할머니는 큰절을 하듯 엎드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재판장님 저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일본이 당당하다면 재판에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나이가 들도록 대사관 앞에서 진상규명과 공식적 사과를 요구하는데 이 재판하는 데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발언이 끝난 뒤에도 이용수 할머니는 한동안 진정하지 못하고 흐느꼈다. 이에 침통한 표정의 유 부장판사도 “어떤 말씀하시는지 잘 알아들었다”며 할머니를 다독였다.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는 강제로 끌려갔다”며 “그런데 일본은 우리가 죽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저지른 나라가 안 나오면 누가 나오겠느냐”며 “할머니들이 지금 다 죽어간다. 법적 배상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두 할머니의 발언이 끝나자 방청객들도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훔쳤다. 방청객 양쪽에 서있던 방호원들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본안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국가 주권면제라는 큰 장벽이 있는 것을 고려해 변호인단에서 설득력 있는 내용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할머니들 나오시느라 고생 많았다. 재판부가 잘 심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주권면제란 한 주권국가에 대해 다른 나라가 자국의 국내법을 적용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이다.

재판이 끝난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의 재판 출석을 다시 강조했다. 할머니는 “왜 내가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 우리 아버지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 있는데”라며 “위안부다 위안부다 하는데 어떻게 내가 이 딱지를 떼어야 하나 생각하면 반드시 이 재판에서 이겨야 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일본이) 안 나오는 것은 죄가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라며 “끝까지 일본한테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은 소송이 시작된 지 3년 만에 이뤄진 첫 재판이다. 지난 2016년 12월 28일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유족 20여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일본은 두 차례 서류를 반송하며 재판을 거부했다. ‘소장 원본에는 표지가 없는데 번역본에는 표지가 있다’. ‘헤이그 협약 제13조에 따른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이유였다. 헤이그송달협약 제13조에서는 ‘자국의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한해서 송달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재판부는 올해 3월 공시송달 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5월 9일 자정부터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효력이 발생해 3년 만에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제도다.

한편 법원에는 이 사건 외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 1건 더 계류돼 있다. 2016년 1월 정식 소송이 시작됐지만 한 차례도 재판이 열리지 못했다.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거나, 2015년 한일외교장관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