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동방] 한국은행이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시중은행들의 예·적금 금리는 여전히 제자리 수준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출금리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추가 유동성 공급이 아닌 유동성 회수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달 16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1.5%→ 1.25%)에도 예금금리를 내리지 않고 있다.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들은 예금금리를 낮췄지만, KB국민과 신한, 우리, KEB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예금금리 인하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그간 기준금리에 따라 예·적금 금리를 민감하게 조정하던 모습과는 이례적인 모습이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거꾸로 움직이며 상승하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14일자 고정금리형(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4주 사이 0.29~0.55% 오르며 기준금리를 1~2회 인상했을 때 뒤따르는 수준의 오름 폭을 보여줬다.
예금금리가 내려가지 않고 대출금리가 오르는 현상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은행을 통한 유동성 추가 공급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금융기관 간 초단기금리인 콜금리 인하, 장·단기 시장금리 하락, 예금·대출금리 하락 등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 연결고리가 끊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추가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도 떨어진다.
시장금리 상승세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는 이러한 현상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금리 인하에도 시장금리는 오히려 올랐다. 지난달 16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당일 연 1.320%에서 이달 8일 1.518%로 0.198%포인트 올랐다.
시장금리가 오름세를 보이자 은행들도 예금금리를 낮추지 못하고 있다. 반면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와 기계적으로 연동돼 자동으로 오름세 전환이 이루어졌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오히려 회수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에 맞추려면 예금금리를 조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예대율(대출/예금 비율) 규제는 예대율을 산정할 때 가계대출은 가중치를 15% 상향하고 기업대출은 15% 하향 조정한다.
주택대출로 돈을 버는 국내 시중은행들의 영업구조 이처럼 산식을 바꾸면 예대율이 100%를 넘기는 은행이 나올 수 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예금금리를 높이고 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대출 총량규제 또한 당면 현안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5%대로 제한한 반면 은행은 이미 가계대출을 6% 이상 늘려 대출을 늘리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지난번 기준금리 인하도 대출 증가로 연결되지 않았다. 한은이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지난 8월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3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2018년 8월 6조6000억원, 2017년 8월 8조8000억원에 미치지 못한 수치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대출 규제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정책금리를 낮춰도 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금융당국이 경기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 대출 규제를 재점검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