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에서 시작한 정부에 제시된 첫 과제는 반쪽 풀기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공사 재개 여부와 사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대립이 대표적인 갈등으로 꼽힌다.
특히,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갈등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일단락됐다. 이해당사자를 배제하고 제3자인 국민이 직접 찬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점에서, 공론화위원회는 갈등을 풀어낼 열쇠로 평가됐다.
하지만 한 차례 갈등을 봉합한 공론화위원회는 이후 다른 분야에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 심지어 학계까지 반쪽으로 갈렸다. 정부 안에서도 문 정부 초대 경제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전 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간 대립이 대표적이다.
‘소득을 키워 소비를 늘린다’는 취지인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가 아직도 고수하는 국정 철학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생계를 보장하고, 양극화를 해소해 사람 중심의 경제 체제를 구현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그 첫 단추는 최저임금 인상이다. 인상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재계와 노동계 사이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2018년 16.4%, 2019년 10.9% 등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재계는 재계대로,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불만이 넘쳤다. 내년에는 그나마 2.9%로 한 자릿수 인상률이 적용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올해 들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추진했으나, 이마저도 반발에 막혔다. 홍 부총리는 지난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업무 보고에서 내년에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내년에도 결정체계를 둘러싼 이견 폭을 좁히는 데는 상당한 불협화음이 예고된다.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 산업을 발굴하기 위한 혁신성장 정책 추진에서도 갈등이 장애 요소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공유경제 산업으로 알려진 카풀 서비스는 택시업계와 IT 플랫폼 기업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화했다. 연이은 택시 기사의 분신자살에 정부와 기업은 뒷걸음질만 쳤다. 소통한다지만, 정작 혁신기업이 양보하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이미 글로벌 시장을 우버, 그랩, 디디추싱이 삼등분해 나눠 가질 동안 국내 공유차 서비스는 규제와 반발에 그쳐 한국 시장도 얻지 못했다. 정부도 전통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존 택시산업을 끌어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 속에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게 생겼다.
반복된 갈등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걸어온 3년은 오히려 한국경제의 체력만 소모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와 글로벌 시장 침체 등 악재 속에서 얽혀 있는 갈등을 풀어가는 사이, 한국경제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국가통계위원회가 최근 설정한 경제 정점인 2017년 9월 이후, 아직도 경기 저점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유한국당은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겨냥해 ‘민부론’을 꺼내들었다. 민부론에는 △경제 대전환 △민간 주도 경쟁력 강화 △자유로운 노동시장 구축 △지속 가능한 복지 구현 등 4대 전략이 담겼다. 다만, 일각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을 뒤집어 민부론이 나왔다고 비평하기도 한다. 일부 경제학 교수는 '상위 1%를 위한 민부론'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즉각 반박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역시 국정감사장에서 "지난 5년간 가구 소득이 연평균 3.1%씩 늘었는데, 2030년까지 가구당 연간 소득 1억원은 앞으로 (연평균) 4.4% 늘어야 달성 가능하다"며 "중산층 비중도 매년 0.5% 포인트 정도 늘어났는데 (70% 목표를 달성하려면) 두 배 정도 늘려야 해 달성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갈등은 '정(正)·반(反)·합(合)'의 과정에서 더 합리적인 결정을 찾는 데 불가분의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 상대를 죽이고 자신을 살리려는 갈등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길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합리론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고 말했다. 당연히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서는 상대를 의심해봐야 하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반문을 던져야 한다. 이제는 정부, 여야, 민간, 학계 모두가 소모적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자신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해줘야 할 때다. 그래야 국민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