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치(無恥)의 나라②] 예의염치론을 통해 본 조국의 앞말과 뒷말들

2019-09-2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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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말로 시작하며 말로 완성된다. 그 말의 힘은 이미 갖춰진 권력에 대한 부정(不定)과 비판에서 생겨난다. 부정과 비판을 통해 대중의 공감을 얻고 권력을 쥔 ‘언어의 투사’는, 어느 날 그 말들이 죽지않고 모두 살아나 자신을 감시하고 자기를 공격해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의 잣대가 누군가에게서 자신이 비판받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를 당혹케 한다. 상대를 향한 비판이 많았고 격했을수록 위험은 더하다. 부메랑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고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을 달고 있을지도 예측불허다.

노자가 말한 다언삭궁(多言數窮)은 뒤탈을 만들지 않는 ‘처방전’이다. 말을 많이 하면 궁지에 처할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하란 얘기다. 조국 장관은 적어도, 노자의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듯하다.

# 부끄러움의 법이 망가지면, 세상의 법을 비웃게 돼 있다

그의 언행불일치는, 앞에 한 말을 뒤에 지키기 어려운 데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거창한 말을 하고 있으면서 이미 행동은 다르게 하는 가식과 위선의 혐의가 있기에 더욱 심각하다. 그는 ‘법’만이 그를 구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의 눈을 피하고 법의 조항을 비켜가면, 모든 문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여긴다.

부끄러움은 법보다 촘촘하고 일상적이다. 부끄러움의 법이 망가지면, 자신을 성찰하고 과오를 뉘우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최근 그를 통해 실감한다. 관자의 관점으로 ‘예의염치’의 부재를 의심케 하는 조국의 말을 들여다보자.
 

[사진=연합뉴스]

□ 예불유절(禮不踰節, 예의란 절제해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 2012년 4월 조 장관의 트위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직업적 학인(學人)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논문 수준은 다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도 논문의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 학계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잠을 줄이며 한 자 한 자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생이 있다.” 그의 딸은 이 글을 쓰기 3년 전에 2주 인턴으로 대한병리학회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됐다. 조국은 딸의 상황에 대해 구구하게 설명할 일이 아니라,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시점에서 어떻게 자신의 선택과는 다른 말을 할 수 있었는지를 해명해야 할 판이다. 그가 비판한 ‘논문의 자격과 기본’을, 딸의 반칙을 통해 훌쩍 넘어가 버린 듯하다.

□ 의불자진(義不自進, 정의는 제자리를 지켜 함부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 2007년초 한겨레에 쓴 칼럼은 이렇다. “유명 특목고는 비평준화 시절 입시명문 고교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생을 위한 특목고 대비 학원이 성황이다. 이런 사교육의 혜택은 상위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누리고 있다.” 같은 해 조 장관의 딸은 특목고인 한영외고에 진학했다. 이후 외고와는 상관없는 고려대 이공계열로 진학했고, 거기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종잡기 어려운 ‘입시 합격 과정’을 거친다. 그가 비판한 사교육 변칙에서 선구자처럼 앞서 나갔다. 그가 관련되었을 수도 있는 가족의 문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정의장관'이라는 법무부 장관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 정유라를 인용하며 ‘돈도 실력이야’를 언급한 조 장관

□ 염불폐악(廉不蔽惡, 염치는 이미 저지른 잘못을 가리고 호도하지 않는 것이다) = 그해 비슷한 무렵의 트위터에는 이런 글이 있다. “장학금 지급기준을 성적 중심에서 경제상태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 3년 뒤 의전원에 진학한 딸은 성적이 좋지 않았고 가정형편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두 학기를 유급하고도 1200만원의 장학금이 나왔다. 2017년 1월 트위터에서 조 장관은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정유라의 말을 인용하며, “바로 이것이 박근혜 정권의 철학”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딸의 장학금에 대해 딸의 실력이 출중해서인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대학에서 줬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 치불종왕(恥不從枉, 부끄러움이란 그릇된 줄 알면서 그것에 편승하지 않는 것이다) = 2010년 한 신문칼럼에서 “위장전입은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파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1999년 그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서울 송파구로 주소지를 이전한다. 한 달 뒤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 이 급박한 주소지 이동과 관련해 당시 취학연령이었던 딸의 서울 학교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이란 논란이 일었다. 오래 전 그의 ‘전입’ 문제를 들춰 그가 저지른 비행이나 불법을 드러낸 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자신 또한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문제에 관해, ‘마음을 후벼파는 소리’라고 남의 얘기처럼 내뱉을 수 있는 천연덕스러움이 무섭다는 얘기다. 그가 자신의 일이 ‘흔한 불법’인 위장전입에 해당되는 걸 몰랐을 리 없다. 다만 그걸 스스로 해놓고도 남을 비판하는 데는 가차없었던 그 점이 문제다. 관자는 이것을 '부끄러움'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시리즈 3편으로 계속>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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