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李能和)가 쓴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 따르면 삼신의 어원은 ‘삼줄(탯줄)’, ‘삼가르다’ 등에서 알 수 있듯 포태(胞胎)를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 ‘삼’에서 왔다고 한다. 피 만드는 산신(産神), 뼈를 모아 주는 산신, 출산을 돕는 산신 등 세 명의 신이 합쳐져 삼신(三神)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신할머니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삼신할매, 제왕할매, 제왕님네, 지앙할미, 삼신할망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전에는 삼신할머니를 집안에 모시는 집들이 많았다. 큰 바가지에 쌀이나 조 등을 담아 부엌 선반에 올려두거나 햇곡식, 한지, 실타래, 미역 등을 봉안해 안방 장롱 위나 안방 한쪽에 시렁을 만들어 모셨다. 삼신단지·삼신바가지·제석주머니·지앙동우 등 지역에 따라 이름과 형태가 다양한데, 모시는 자리는 공통적으로 안방이나 부엌 등 여성의 생활공간이었다. 중부지방에서는 중간을 막고 두 끝을 터놓은 전대 모양의 ‘제석주머니’에 쌀을 담고 한지 고깔을 씌워 안방 구석에 매달고 명절이나 가족의 생일, 제삿날에 음식을 바치면서 기원을 올렸다. 영남지방에서는 큰 바가지에 쌀을 담고 한지로 덮어 묶고 안방 시렁 위에 모셔놓은 것을 삼신바가지라 부르는데, 바가지 위에 수명장수의 상징으로 타래실을 올려놓기도 했다. 호남지방에서는 단지에 쌀을 넣고 지앙동우, 지방단지 등으로 불렀다.
시월상달이 되면 모셔둔 바가지나 단지에서 묵은 곡식을 꺼내고 햇곡식으로 갈아주면서 간단한 치성을 드렸다. 묵은 곡식을 집 밖으로 내보내거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집안의 재복이 나가는 것과 같다고 여겨 떡이나 밥을 해서 집안 식구끼리만 나누어 먹었다.
삼신할머니는 아이의 수호신이면서 가정을 돌보는 가신(家神)으로 받들어졌다. 각 가정마다 한 분이 있어 부계혈족을 중심으로 같은 성씨(姓氏)는 같은 삼신할머니가 돌본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한 지붕 아래서 출산해도 상관없지만 며느리와 딸은 같은 시기에 같은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금기시했다. 삼신할머니는 아이의 수호신이자 아이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이어서 비위를 거스르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믿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못을 박으면 삼신할머니가 시끄러운 소리에 화가 나서 아이의 눈을 멀게 한다거나, 삼신할머니를 잘 받들지 않아 집을 나가버리면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다고 여겼다.
삼신할머니의 유래는 제주의 서사무가(巫歌) ‘삼승할망본풀이’나 동해안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제석본풀이(당금애기무가)'와 같은 무속(巫俗)을 통해 전승되어 왔다. ‘삼승할망본풀이’에 따르면 동해 용왕과 서해 용왕의 딸 부부가 늘그막에 딸을 하나 얻었는데 그 딸이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는 말썽쟁이로 자라자 딸을 무쇠상자에 가둬 바다로 띄워보낸다. 9년 세월이 흐른 뒤 육지에 쓸려온 무쇠상자를 사람들이 열어보니 열여덟 아리따운 처녀가 들어 있었다. 동해용왕 따님아기는 인간세상으로 가서 출산을 돕는 삼승할망이 되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오십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임박사 부인에게 아기를 점지해 줬지만 어디로 해산을 시켜야 하는지 몰라 산모가 사경에 이른다. 옥황상제는 제대로 된 삼신을 보내달라는 임박사의 간청을 듣고 천왕 지왕보살의 딸인 명진국 따님아기를 인간세상으로 내려보내 두 따님아기가 삼승할망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된다. 옥황상제는 두 사람을 불러 꽃씨를 주며 꽃을 잘 피운 사람에게 삼승할망의 자격을 주겠다고 말했다. 결국 내기에서 이긴 명진국 따님아기가 삼승할망이 되고 동해용왕 따님아기는 저승할망이 되었다고 한다. 삼신할머니는 출산으로 인한 고통과 사망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에서 탄생한 민속신앙의 여신이라고 할 수 있다.
<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