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G그룹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새 먹거리 확보,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경제 불확실성으로 수익성 제고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러나 구광모 회장을 중심으로 한 4세 경영체제 발판을 다지는 데 있어 중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2003년 지주사 전환 후 눈부신 성장을 보인 LG그룹이 다시 한 번 ‘again 2003’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LG그룹 계열사(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LG CNS, LG상사 등 11개 기업)들은 지난 2017년부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지난 2016년까지 자본적지출(CAPEX)은 10조원 수준이었으나 이듬해 15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2018년 CAPEX는 19조원에 달했다. 상반기 9조원, 하반기에 10조원이 추가 집행된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10조5000억원이 투입된 가운데 하반기 역시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 있다.
◆전자·화학·통신 모두 수익 악화·투자부담 확대
LG그룹의 이러한 행보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룹 매출(2018년 기준 160조원)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전자부문은 LG전자를 중심으로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부품계열사가 수직계열화를 이루고 있다. 모바일, 생활가전(냉장고, 세탁기 등), TV 등이 글로벌시장에서 상위권의 지위를 보유중이다.
그러나 모바일 부문이 영업적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디스플레이 사업의 LCD 업황 부진과 OLED 사업 전환 과정에서 비용 발생 등으로 실적 저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중국 발 공급 과잉으로 대형패널 가격 하락이 가속화됐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경쟁심화 등을 고려하면 전자부문 수익성 제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스마트폰 부문은 상위 제조사의 시장고착화로 반전 기회를 엿보기도 쉽지 않다.
그룹 매출의 약 25%를 차지하는 화학부문은 LG화학, LG생활건강, LG하우시스 등이 포진하고 있다. 다각화된 사업포트폴리오는 물론 안정적인 이익창출력을 확보해 캐쉬카우(cash cow)를 담당한다. 그러나 2018년부터 수익성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화장품 부문은 고가브랜드 비중 확대로 선전했으나 석유화학 수급 악화와 전방산업 부진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해 들어서도 이러한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
통신부문에서는 LG유플러스가 업계 후발주자임에도 선전했다. 지속적인 가입자 기반 확대로 LTE, IPTV 등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개선세를 보였다. 그러나 2018년부터 무선부문 가입자당평균매출(ARPU) 하락 폭 확대,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유선부문 매출둔화로 영업이익률은 전년대비 다소 하락했다.
최근에는 유료방송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CJ헬로 인수를 추진중이다. 이와 함께 5G 관련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통신망 구축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만큼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전자, 화학, 통신 등 모두 수익 악화, 투자부담 확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LG그룹의 잉여현금흐름(FCF)은 6179억원 적자로 전환했으며 올해 상반기만 마이너스(-) 573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현금흐름 창출력이 약화된 가운데 투자규모 확대가 그룹 전반 차입부담을 대폭 늘린 것이다. 합산 총차입금은 2017년 말 25조9000억원에서 작년 말 32조3000억원으로 확대됐다.
그룹 합산기준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2018년 말 각각 125%, 23.4%에서 2019년 6월 말 134.7%, 27%로 높아졌다. 다만 한국기업평가는 LG그룹에 대해 재무안정성은 우수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광모 회장, ‘공격적’ 평가 받는 이유
지난 2010년 LG그룹은 그린 경영전략인 ‘Green 2020’을 선포했다. 녹색성장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경영 달성을 위함이다. 불과 1년이 남지 않는 시간을 보면 LG그룹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그러나 LG그룹이 ‘최초 지주사’ 타이틀을 단 시점인 2003년부터 현재까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3년 ㈜LG 주가는 역사적 저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2004년은 ㈜LG와 ㈜GS홀딩스의 상호 지분정리가 완료되면서 현재 LG그룹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주가는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크게 하락하기도 했지만 2016년 말까지 ㈜LG 주가는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보다 높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2017년 반도체 호황 사이클에 힘입어 가파르게 올라 역전됐지만 항상 ‘2인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LG그룹 이미지를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기 시작한 2018년, 그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올해까지 ㈜LG 주가가 부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난해 구본무 회장 타계 이후 경영 바톤을 이어받는 구광모 회장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LG그룹의 투자규모 추이를 보면 구광모 회장이 모든 것을 결정한 셈이다.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움추렸던 2003년, 그리고 이후 눈부신 성장이 기대도 되지만 글로벌 경기상황 등을 고려하면 반대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만큼 구광모 회장은 LG그룹 새도약의 역사를 쓰는 인물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인물이라는 갈림길에 서있다. 최근 구광모 회장을 두고 이전 CEO와는 달리 ‘공격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 또한 현재 LG그룹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