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38)의 친척들은 명절 때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버지 형제들을 비롯해 친척들 대부분이 서울 출신이지만, 구성원들 사이의 정치 성향이 워낙 달라, 이야기를 꺼내는 족족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 때에는 김씨의 가족들도 정치 이야기를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촌 동생의 대학진학 이야기를 하다가도, 재테크 이야기를 하다가도 '조국'이라는 이름이 수시로 들먹여졌다. 김씨는 "조국 장관 임명이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로 큰 파문을 불러왔던 것은 맞는 것 같다"라면서 "다들 자세히는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일단 총선 전까지 야당이든 여당이든 지켜보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조국 임명을 둘러싸고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19년 추석 연휴가 끝났다. 정치권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추석 이후의 정국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생집중'에 방점을 찍었다. 조국 논쟁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조국 법무부장관 퇴진 운동에 계속 화력을 집중하겠다는 결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추석 밥상머리 민심은 어떨까? 아주경제 기획취재팀은 11일부터 15일까지 시민들을 직접 만나 최근 정국과 경제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조국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4명의 장관 임명 소식을 올렸다. 이 게시물에 달린 댓글의 개수는 5100개에 달한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이다. 대부분 게시물의 댓글이 1000개 이하인 데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최초로 정상회담을 연다는 소식을 올린 2018년 3월 9일 포스팅의 댓글도 2500개 남짓인 것을 고려할 때 폭발적인 관심인 셈이다.
이씨는 "조국 이슈가 지나치게 많이 나와 피로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일반 학생들과 고위층 자제들은 다르구나 하는 박탈감은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그렇다고 해서 나경원 의원 아들 의혹도 나오는 등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총선 때는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남 출신의 금융사 고위 간부 김모씨(56)는 "조국 장관 임명으로 2년 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중도층의 마음이 떠난 것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이 느낀 상대적 박탈감을, 그들의 부모 세대도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 내 아들딸을 그렇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적잖이 들었다"고 밝혔다.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윤모씨(30) 역시 조국 자녀의 논문 제1저자 등재 논란에 대해서는 실망했다면서도 "야당이 검찰개혁이 무서워서 더 강력히 반발한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충청남도 서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심모씨(43)는 조국 자녀 논란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심씨는 "조국 자녀가 진학하던 당시에도 학원에서 근무했는데, 친척 가운데 교수가 있는 학생 중에서 수시에서 떨어진 아이를 본 적이 없다"면서 "아마 당시 입학한 학생들 실태를 조사하면 가관일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조국 자녀 사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심씨는 지적했다.
◇"법무부 장관 물러나야" 강경론도···"내년 총선이 모든 걸 말해줄 것"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정모씨(65)는 "조국 법무부 장관은 사퇴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에 시달릴 것이다"고 강조했다. 경북 포항에 거주하는 최모씨(73)는 "조국 장관 임명은 잘못됐다. 임명 부당성에 대해 문재인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경북 바닥 민심은 문재인은 안 된다가 된 지 오래였지만 일방통행식 조국 장관 임명으로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다"고 강조했다.
강원도 강릉시에 거주하는 김모씨(82)는 이번 추석에는 자식들을 만나러 역귀성을 했다. 김씨는 "결국 정치권은 어느 구석이고 다 부패했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났다"면서 "깨끗한 척해도 다 거기서 거기다"라고 실망을 표했다. 내년 총선에 자유한국당을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하지 않았지만, 똑같으면서 다른 척하는 민주당에 표를 주기도 싫다고 김씨는 밝혔다.
전북 고창 출신의 30대 여성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조국 장관이 자식의 교육과 진학 경로를 보면 서민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으니 내년 총선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겠냐"고 밝혔다.
◇눈물 나도록 어려운 경제···민생을 먼저 챙겨주길
조국 장관과 함께 추석 연휴에서 가장 많이 이슈로 등장한 것이 경제 문제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경우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자영업을 하는 30대 후반 오모씨는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 공산품 가격도 오르면서 지출이 현저하게 증가했지만, 주 52시간 도입 등 여러 이유로 매출은 오히려 하락했다. 소상공인으로서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고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 오산시 중앙동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43)는 "주 고객이 젊은 청년들인데 경제가 어려운 건지 꽃을 사지 않아 전년 대비 매출 60% 급감했다"면서 명절에 부모님께 용돈마저 챙겨드리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고 호소했다.
경기도 평택 서정동에서 청과물점을 운영하는 윤모씨(53)는 "올해는 명절 대목 같지 않다"면서 "명절 때면 최소 2000상자가 거뜬히 나갔었는데, 올해 설부터 매출이 줄더니 이번 추석에는 500상자도 팔리지 않아 대목인데도 월세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고 밝혔다.
같은 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씨(39)도 "본사와 계약한 매출을 맞추기 위해서는 명절에도 쉬지 않고 나와 일을 해야 한다. 충주에 있는 부모님께는 명절에는 전화로만 인사드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S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코리아와 함께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26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년 총선에서 어떤 요인을 가장 고려할 거냐는 질문에는 경제 상황이라는 응답이 4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계개편(24%), 외교 문제 (17%), 남북관계 (9.4%) 등이 중요한 문제로 꼽혔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서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는 45.1%, ’잘 못하고 있다‘ 부정적인 평가는 51.6%로 나타났다. 정당지지도에서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31.3%, 자유한국당 18.8%, 정의당 6.3%, 바른미래당 4.1% 순이었으며,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은 38.5%를 기록했다.